대조선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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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朝鮮帝國
대조선제국
Flag of Empire of Chosun.png The Imperial Seal of Chosun 02.png
(국기) (문장)
표어: 광명천지(狂命天地)
(온 세계에 그 미친 명령이 발하다.)
국가: 대조선제국 애국가
Land of Empire of Chosun02.png
공용어 조선어
수도 한성
큰 도시 만주
정부 전제군주제
초대 원수 태조 이성계
설립 1392년
화폐
종교 유교
인구 약 1,400,000,0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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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알리 무하마단은 메카성지순례를 가기위해…
대조선제국

대奀썬제국 (大奀鮮帝國)은 대고려제국이 무너진 뒤 시황제 (始皇帝) 이성계정도전 외의 일파들이 건국한 아시아의 제국으로, 1392년 건국되어 1910년 왜국에 의하여 국권을 강제 침탈당하였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한반도에서 조선왕국으로 시작하여 힘을 기른 끝에 1398년 8월 15일 명나라를 정복함으로서 대제국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후 차근차근 영토를 넓혀 정조대왕 사망 직전인 1800년에는 동으로는 사할린, 서로는 키르기스스탄, 남으로는 인도타이, 북으로는 시베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축적하였으나 정조대왕 사후 세도정치삼정의 문란 등으로 인하여 그동안 모았던 그 업적이 조각조각나는가 싶더니 결국에는 왜국의 급부상으로 위기를 맞는다. 이에 광무제 (光武帝)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 폐하께서 친히 국가를 쇄신하기 위해 대안적인 이름을 고안하여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친 뒤 대안적인 차원에서 국가를 유지하려 하였으나, 오래 버티지 못한 채 1910년, 마지막 보루까지 빼앗기며 멸망하고 만다. 그 이후 건국된 대한민국도 그때의 영광을 되찾지 못 하고 있다.

역사[편집 | 원본 편집]

찬란한 건국[편집 | 원본 편집]

본래 대고려제국의 장군이었던 이성계우왕최영 장군의 명령으로 요동 정벌을 하러 갔으나, 권력을 원하는 학자 정도전의 꼬드김에 위화도 회군을 일으켜 스승이었던 최영의 목을 친 불량 학생이었다. 이성계는 이후 대고려제국의 왕을 이나 갈아치우고 반대파인 정몽주 등을 아들 이방원을 통해 저승길에 관광태우고 1392년 7월 17일에 조선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세운다. 제헌절은 바로 이를 기념하는 날이다.

그들은 당시 강대국이었던 명나라와는 외교적으로 사대주의 정책을 폈으나, 뒤로는 명나라를 쓰러뜨리고 중원의 승자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정안대군 이방원의 정책으로 조선은 엄청난 군사 강대국으로 변모하였다.

조선은 군사를 일으켜 명나라로 쳐들어갔다. 개국공신 사살을 일삼던 홍무제 주원장의 사망 이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 숨어 지내던 사살된 공신의 후손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혼란에 빠져 있던 명나라는 조선의 강대한 군세에 밀려 남쪽으로 후퇴를 거듭했다. 오히려 사살된 공신들의 후손들의 일부가 이성계의 군사에 가담하였고 주원장의 고향이었던 난징 봉양까지 쳐들어가 주원장의 조상들의 묘를 파헤치고 그 생가를 부수어 버릴 정도였다. 결국 명나라의 2대 황제 건문제 주윤문이 피살당함으로 명 정벌은 끝이 났으니, 이것이 바로 대조선제국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때 이성계가 노망이 난 나머지 막내 아들인 10살짜리 의안대군 방석이를 태자에 책봉하였다. 그런데 건문제의 목을 따온 최고사령관 정안대군 이방원이 공신 목록에서 빠진데다 또다른 최고사령관 정도전마저 이성계의 편에 서서 방석이를 지지하는 바람에 결국 이방원은 불만을 한수레 싣고 와 정도전과 방석이, 그리고 그 일파들을 학살한 뒤 아버지를 경복궁 변소에 유폐시켰다. 그리고 {{주석|이성계의 둘째 아들인 영안대군 방과를 황위에 올리니 이 분이 바로 정종이시다. 그러나 이방원의 넷째 형인 회안대군 이방간은 조선의 개국공신 2등이자 망나니인 박포의 꼬임에 넘어간 나머지 이방원이 하던 행동을 똑같이 하다가 그 역시 이성계가 유폐되어 있는 변소 바로 옆에 새로 지어진 또다른 변소에 갇혀 버렸다. 방해자를 완전히 제거한 이방원은 선양을 받아 황위에 올랐으니, 이분이 바로 태종 되시겠다.

태종은 비록 인간성이 막장이었으나 조선의 대륙 통치 체제를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조 이성계는 변소에 쉰내 나게 갇혀 있다가 겨우 탈출, 명나라를 제건하려는 새력인 영락제 주체의 지원을 받아 아들인 태종을 혼내려 군사를 일으키다가 패배하고 완전히 힘을 잃게 된다. 아버지마저 이긴 패륜아 태종은 황권을 강화하기 위해 무자비한 숙청을 감행하여 반도와 대륙이 동시에 벌벌 떨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를 전해 들은 명나라의 영락제는 베이징 근처에 자금성을 지으며 100만 대군을 양병하려고 하였으나 영특한 태종이 알아차리고 이를 기회 삼아 명나라를 재견하려는 세력들을 모조리 사살하였다. 한편 생사의 기로에 있던 영락제는 천단 아래에서 태종에게 무릎을 꿇으며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구걸하고 또 구걸하였다. 이후 영락제는 조선이란 말만 들으면 벌벌 떨어 기강이 잡히게 되었다. 이렇게 대조선제국은 확실히 중국 전체를 장악하였고, 영락제는 베이징 근처의 조그마한 땅을 봉토로 얻고 곧이어 몽골로 추방당하였다.

안정 뒤에 막장, 막장 뒤에 안정[편집 | 원본 편집]

태종은 이렇게 통치 체제를 완성하였으나, 맏아들인 황태자 양녕대군은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를 탐내며 음악과 말춤에 빠져 강남스타일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으나 조용필의 바운스를 좋아하던 태종이 아들과의 음악적 견해 대토론 끝에 격노하여 양녕대군을 경기도 광주유배시킨 뒤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황태자로 삼아 황위를 물려주니, 이분이 바로 그 위대하신 4대 황제 세종대제시다. 세종대제는 훈민정음 창제 등 각종 문화 사업을 전개하였으며 과학을 무척이나 발전시키시어 그렇잖아도 막강한 한민족은 문화적으로도 우월한 지위를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그동안 한민족을 오랑캐라 업신여기며 은근히 무시해 온 민족들은 모조리 몸서리를 치게 되었다. 이 훈민정음은,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우수성을 인정받고 백성들에게도 좋은 호응을 얻었다. 이에 세종대제께서는 한글을 국어, 한문을 공용어로 채택하는 등 조선의 문화를 만방에 알렸다.

그러나 이렇듯 훌륭하신 세종대제도 자식 농사는 잘못 지었는지, 훌륭한 기술로 아들만 18명이나 만드시는 기적을 발휘하셨으나 5대 황제이자 유능한 태자였던 문종이 황위를 물려받은 지 2년 만에 승하하고 그 아들 단종이 12살의 나이에 제위에 오르자 그 자리를 노리고 있던 세종대제의 차남 수양대군이 할아버지 태종을 벤치마킹해서 조카 단종을 폐위시켜 강원도 영월군으로 유배시켜 죽인 뒤 자신이 황위에 앉았다. 세조가 된 수양대군은 잔혹한 공포 정치를 단행하고 집현전을 폐쇄하는 등 언론 탄압 정책을 고수하였고 신하들에게 충성 경쟁을 시켰으며, 수양대군을 극도로 싫어하던 사육신들은 단종의 복위를 위한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하여 모두 거열형에 처해졌다.

그 뒤를 이은 8대 황제 예종은 세조의 차남이지만, 의경세자의 몸이 허약하여 세조의 사망 이전에 죽은 덕분에 대신 황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오래 살지 못 하였으며, 그의 유일한 업적은 권력 욕에 가득찬 유자광의 모함에 빠져 병부상서에 올라 앞길이 창창하던 청년 남이를 죽여 황제로서의 위엄을 과시하여 반역배가 없게 한 것과 세조 때 공적을 세운 훈구파에게 벼슬자리를 잘 뿌려준 일이다.

뒤를 이은 9대 황제 성종은 겉으로는 선비인 척 하여 사림파와 잘 화합하며 놀아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 훈구파와 화합하는데 실패하여 훈구파들이 이를 갈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워낙 여자에 빠져 있던지라, 폐비 윤씨의 비극이 이 때 일어났기도 하다. 자세한 일은 해당 항목 참조. 어쨌든 폐비 윤씨는 폐비 후 3년 뒤 사약을 들게 된다.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 연산군은 희대의 폭군으로, 1494년 즉위하여 첫 4년 간은 선정을 펼쳤지만 이후 무오사화갑자사화를 거치면서 수많은 신하들을 학살 또는 유배시키고 제대로 미쳐, 대륙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불러 자신의 애첩으로 삼고 자신의 할머니 인수대비마저도 박치기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의 반인륜적 행태를 펼쳤다. 결국 1506년, 학살당하지 않은 나머지 사림파들을 불로 지지고 시체를 잘라 쪼깨고 부수어 뼛가루를 바람에 날리는 잔인한 짓을 단행하다가 결국 중종반정으로 이복 동생인 중종에게 황위를 빼앗기고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선비의 대두, 방자한 왜놈과 만주족의 충정[편집 | 원본 편집]

11대 황제 중종은 선비들, 즉 사림파를 중용했지만 공신들과 싸움이 일어나 기묘사화를 일으키는 바람에 조광조를 비롯한 선비들이 대규모로 학살되는 비극이 다시 한 번 일어났으며, 뒤를 이은 인종명종 때에는 외척들의 득세로 을사사화라는 사화가 한 번 더 일어나며 나라가 파탄에 이를 지경이었으나,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사망으로 다행히 나라가 어느 정도 바로잡히게 된다.나라가 거의 망했지만 결국 적나라가 쳐들어서 엄청난 민중이 빨갱화를 일으켜 고통을 느끼며 나라가 망한 것 같다.

14대 황제인 선조 대에는 드디어 훈구파가 멸종하고 사림파가 대거 등용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조정랑이라는, 인사권 담당 벼슬을 두고 서인동인으로 갈라지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고, 붕당정치라고 불리우는 이 정치 형태는 23대 황제인 순조 대까지 계속되며 두고두고 조선을 괴롭히게 된다. 붕당 정치는 이이스트레스로 사망하게 만들고, 왜국이 멀쩡한 조선을 치려 하는데도 방비를 전혀 못 하게 만든다.

결국 왜국은 1592년, 약 4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부산광역시에 상륙하는 임진왜란을 단행하고 만다. 전쟁 초기의 대조선제국은 혼란에 빠져 평양광역시까지 내 줄 뻔 하였으나, 그 정도는 광활한 대조선제국의 영토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영토였다. 결국 왜국은 전열을 가담은 대조선제국의 관군과 이순신의 놀라운 용병술 덕분에 병사들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오히려 대조선제국은 1598년 왜국으로 쳐들어가, 당시 왜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사살하는 전과를 이룬다! 그리하여 당시 후계자 지위였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으로 친히 와서 선조에게 무릎을 꿇고 대조선제국에게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어 준다.

15대 황제인 광해군 때에는 서양 세력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그들과의 교류를 늘리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여당이라고 할 수 있었던 북인, 그 중 대북은 선조의 적장자라는 이유로 왕권을 위협하던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감금하는 짓을 저질렀고, 결국 광해군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던 광해군을 수구꼴통 서인들에 끌어내리게 된다. 이후 희대의 머저리 인조가 황위에 올라, 서방과의 무역을 전면 중단하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 때문에 과거 대조선제국을 찬양하던 애국자였던 홍타이지는 서방 상인들과의 돈벌이로 생계를 꾸리고 있었는데, 무역이 중지되자 홍타이지는 사병을 이끌고 수도인 한성으로 행진하게 된다. 인조는 이에 친히 삼전도에서 홍타이지의 의견을 경청하여 무역을 재개한다고 발표하였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라였고, 결국 뒤통수를 맞은 홍타이지는 만주에서 "인조 이 삐–"를 외치면서 죽고 만다.

17대 황제 효종 대에 이르러 송시열 등의 주도 하에 대정복 사업을 개시, 만주를 확고히 장악하고 반역을 일삼던 이자성장강에 시키는 등의 업적을 쌓았다.

분노의 정치, 최후의 황금기[편집 | 원본 편집]

현종 대에는 세력을 잡은 남인 인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서인들이 예송논쟁이란 말장난을 벌여 티격태격했지만 별 일은 없었다. 하지만 19대 황제인 숙종은 황권 강화를 위하여 환국이라는 것을 일으키는데, 그것은 주기적으로 주도 세력을 교체하면서 수많은 신하들을 유배 또는 사형시키면서 황권을 광화시키는 방법이다. 숙종도 성종연산군 못지 않게 여자를 좋아했는데, 처음에는 희빈 장씨에게 미쳐 있다가 숙빈 최씨에게 홀린 뒤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리는 일도 일어났다. 그런데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는 과정에서 그의 아들인 경종이 그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때 일어난 일련의 사태로 경종은 고자가 되었고 허약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태자가 황위에 오르니 20대 황제인 경종이다. 그러나 몸이 약해져 시름시름 앓는 데다가 서인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즉위 4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서인은 정치 공작을 통해 영조를 황위에 올린 뒤 남인들을 싹쓸이했는데, 남인을 어떻게 처우할 지의 문제로 인하여 노론소론으로 당이 또 갈리고 말았다. 영조는 탕평채라는 신종 반찬을 신하들에게 주면서 중흥을 일으켰으나, 이후 나이가 들면서 영조는 노망이 들었고 총명한 아들인 사도세자를 질투하고 시기하여 뒤주에 가두어 죽이기까지 한다. 이 때 노론은 또다시 사도세자를 지지하는 시파와 사도세자를 배척하는 벽창호파로 나뉘어진다. 이후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아버지의 신원을 회복하였고 오히려 죽은 할아버지가 치매 환자라고 하면서 할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었으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조선제국이 마지막으로 황금기를 누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의 주요 업적은 규장각수원 화성을 세운 것이다.

외척의 발광과 위대한 제국의 멸망[편집 | 원본 편집]

하지만 영원히 번영할 것 같던 대조선제국도 23대 황제인 순조 시대부터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당시 순조의 나이가 어려 섭정을 하던 영조의 후처 정순왕후가 서양에 우호적인 세력과 시파들을 모조리 잡아 족친 사건을 계기로 붕괴에 가속도가 붙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순조가 친정을 시작하자마자 순조의 장인인 김조순을 시작으로 반격에 나서, 세력을 회복한다. 김조순은 나름 착했지만 김조순 이외의 안동 김씨들은 모조리 못된 놈들이어 자기 편만 편애하고 다른 세력은 탄압하고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리며, 뇌물만 받아먹는 세도정치를 자행하는 바람에 나라는 점차 썩어 간다. 설상가상으로, 삼정의 문란이 나라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서 민란이 제국 각지에서 일어나 영토는 나날이 줄어들어 갔으며 천주교의 유입으로 평등한 사상을 부르짖던 기독교 운동가들이 지하 운동을 벌이고 이에 영향을 받아 우리 식대로 평등하자는 동학 또한 등장하게 된다.

순조의 외아들 효명세자는 서학을 알던 박규수와 친하게 지내며 희망의 빛이 비추는 듯 했지만 순조가 사망하기도 전에 요절하였고, 순조의 손자이자 효명태자의 아들 헌종은 안동 김씨의 견제를 위하여 자신의 외가인 풍양 조씨와 협력했지만, 풍양 조씨도 다 못된 놈들이라 나라는 더 거지가 되었고 그나마 수장 조만영이 죽자 정권은 못된 안동 김씨들이 되찾아갔다. 그 뒤를 철종이 이어 25대 황제가 되었는데, 이 철종은 원래 순조가 일찍이 황족의 위신을 깎았다고 사약을 내렸던 은언군의 손자였다. 덕분에 강화도라는 섬에서 나무꾼으로 살아갔던지라 머리는 빈 깡통이어 안동 김씨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여자에 빠져 죽는 비운의 황제가 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결국 영토는 한반도로 국한되는 비참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26대 황제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께서 즉위하자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여러 진흥책으로 영토를 상당히 수복하였지만, 고종의 아내 명성황후와 그 일파인 여흥 민씨의 계락으로 그만 쫓겨나고 만다. 나라는 다시 개판으로 돌아가고, 모처럼 찾은 영토도 다시 빼앗기게 된다. 그런 가운데 왜국은 옛 은혜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대조선제국을 강제로 개항시키고 말았다. 이후 을미사변이라는 짓으로 명성황후를 죽이는 만행까지 하게 되고, 이를 참다 못한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께서는 국가를 쇄신하기 위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광무개혁을 단행했지만 대조선제국을 넘보던 또다른 세력인 러시아를 짓밟은 왜놈들은 을사늑약을 계기로 대한제국을 완전히 발 밑에 두게 된다. 이에 고종통천융운조극돈륜정성광의명공대덕요준순휘우모탕경응명입기지화신열외훈홍업계기선력건행곤정영의홍휴수강문헌무장인익정효태황제께서는 1907년,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3명을 파견했지만 이미 양놈들은 왜놈 편이 되어 실패로 돌아갔고, 고종은 쫓겨나 버렸다. 뒤를 이은 순종은 왜놈들에게 순종하다가 안중근 의사께서 왜놈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서 죽인 일 때문에 왜놈들이 화를 버럭 내자 얼마 못 가 나라를 내놓고 말았다.

대조선제국의 황실은 본디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존재였으나 나라를 빼앗겨 개차반으로 전락하였으며, 다시는 존경을 받지 못하는 폐기되어야 할 황실이 되어버렸다.

도보시오[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