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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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on, you would have.

“내가 한번은 대처를 불러서 나는 노동조합원 200 명을 쏘아 죽이고 바다에 던져버렸다고 했지. 그러자 대처가 이렇게 대답했어. “이봐요, 구스티. 그 시체를 나한테 주면 내가 내일 점심 시간에 남태평양에 좌빨들의 시체로 섬을 간척해 놓을게요.” 이렇게 냉정할 수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네 奀을 빌려 쓴다고 해도 저 여자는 건드리고 싶지 않아.”

오스카 와일드

“대처는 살짝 대처...”

굽시니스트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는 영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총리 가카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완전히 정복하고, 대영제국을 재건했으며, 아르헨티나를 작살낸 위업을 이루었다.

옛날 좋은 시절에 태어난 대처는 정직하며 존경할 만한 사회 구성원으로, 외설 모델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유감스럽게도 업계에서 퇴출당한 뒤, 대처는 몇 가지 사소한 외과수술을 받고 영국 정치를 바꾸기 위한 도전에 뛰어들었으며, 1980년대에 보수당 당수로 선출되었다.

대처의 정치적 경력은 영국 역사상 가장 건설적인 것이었다고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평가하고 있다. 타고난 사회적 십자군인 대처는 자신이 살고 있는 멋진 나라의 가난한 자들, 사회적 약자들,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자들의 생활을 신장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바쳤다. 국제 외교에서도 동일한 전략을 채택하였으며, 보다 덜 가진 자들에게 경제적 자극과 동기부여를 부여하려고 힘썼다. 그녀는 나라 곳곳의 요소에 그야말로 신기원을 이룩한 정치적 지도자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초기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일찍이 어린 마거릿은 사업가로서 엄청난 재능을 나타냈다. 7살 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불필요한 소유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그 소유물들을 도로 팔아서 최대 이윤을 뽑아내는 식으로 그 경력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격려에 힘입어 대처는 이윤의 명목 하에 사기를 치는 기술을 갈고 닦았다. 이 재능은 후일 총리에 재임할 때도 톡톡한 역할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대처는 그동안 힘써 왔던 경제 관련 일과 육체노동을 그만두고, 빼어난 외모를 이용하여 또다른 업종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포르노 산업에서 명성을 떨친 결과, 대처는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사가 된다.

“그렇게 허리를 잘 돌리는 애는 지금껏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영화감독

그러나 성공은 잠깐 동안의 것. 대처는 이 업계에서 물러나게 되는 위험에 처한다. “더 이상 그런 평범한 걸로는 안 된다”는 감독과의 양립할 수 없는 의견차이로 인해 갈라서게 되고, 대처는 ‘사소한 정신 붕괴’라는 증세로 고통받게 된다. 그리고 과거의 마거릿에서 탈피하기 위해 그녀의 외모 전체에 대수술을 가했다. 금속 외골격과 수 마일 길이의 내부 배선을 달고, 대처는 영국 정치계에서 새로운 경력을 쌓을 준비를 시작했다.

업적[편집 | 원본 편집]

1987년 선거방송을 하는 대처 남작부인.

1950년대 초, 금욕적이고 절제된 정부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다. 전세계의 사회지도층은 자기들의 계급에서 동성애자들을 추방함으로써 남성의 천부인권을 스스로 박탈해 버렸고, 하루하루를 피폐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여자를 데려오는 것이었다. 기왕이면 엉덩이가 작고 예쁜, 슴가가 멋지게 균형잡힌, 그리고 뭔가 약간 ‘특이한’ 여자면 더 좋겠다 싶었다.

그런 전차로 유명한 전직 포르노 배우였던 대처가 철저한 무관심 속에,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정당(그때도 그랬고 요즘도 그렇지만)이었던 보수당의 공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가 말할 때마다 그 입에서 튀는 파시즘보다 그 입이 움직이는 모양에 집중하게 되면서, 대처는 국회에서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대처는 그녀와 함께 즐긴 남자들의 도움으로 단숨에 당의 높은 위치까지 뛰어올랐다. 대처는 입당하고 얼마 되지 않아 보수당 당수가 되었으며, 역사상 가장 주목받으면서 또한 가장 열성적인 지지를 받은 총리 후보자였다. 이것은 남자들이 그녀를 아무리 봐도 질려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대처는 어디를 가든지 핸드백을 하나 달고 다녔는데, 소련 서기장이 세 명 바뀌는 동안 계속 그 핸드백만 들고 다녔다. 한번은 이 핸드백 하나만 가지고 1개 기갑사단 전체를 쓸어버린 적도 있다.

대처가 총리로 선출되자 모든 남성 유권자들이 집단 오르가즘을 느꼈다. 웃는 지지자들과 악수하면서, 대처는 영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이것이 바로 "완벽한 사회"(perfect society)"신새벽"(new dawn)이었다. 하지만 대처의 매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들기 시작했고, 위험할 정도로 우익에 치우친 정책들로 인해 외모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호리호리한 몸매와 보이쉬한 외모에 열광했던 지지자들은 그 무뚝뚝한 얼굴에서 칫솔 모양 콧수염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근육 경련으로 인해 저절로 몸의 오른쪽으로 들리는 오른팔을 보고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대처가 권좌에서 이룩한 업적들로 인해 이런 걱정들은 한층 더 복잡해졌다.

1930년대 독일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증명된 방법으로 정부를 리모델링함으로써 대처는 영국의 사회경제적 분위기에 혁명을 가져왔다. 침체된 영국 경제에 충격요법을 가하기 위해서 강력한 전술을 채택하였으며, 영국인들이 일하고 싶어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다. 지금 수천 명의 영국인들이 직업을 가지기 위하여 발악하게 된 것은 모두 대처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처는 위험한 빨갱이 찌끄러기들을 영국 사회에서 일소함으로써 사회를 예전의 영광스러운 시대로 복구하고, 노동자 계급을 철저히 짓눌렀다. 또한 사회적 단결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대처는 기업을 후원하고, 크고 아름다운 가정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권력을 동원해 그들이 곤란을 겪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대처의 목적의식과 성과로 인해 대처는 사회복지사업가로도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주요 정책[편집 | 원본 편집]

대처는 고질적인 근육 경련 때문에 자주 팔이 이런 자세로 들리곤 했는데, 상담사들은 그것이 첫사랑에게 차인 기억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가설을 제안한 바 있다.

숙련된 정치인이었던 대처는 다음과 같은 유용하고 실현가능한 정책을 입안했다.

향후 10년간 정책 논단:

  • 사회를 안정시키고 통합시키기 위해, 노동 계급의 가죽을 벗겨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생가죽을 압축, 신축, 저장, 건조한 뒤, 인쇄소로 보내 다음 총선 때 쓸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
  • 노동 계급이 아닌 사람들이 고발당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공권력을 민영화한다. 빈민과 실업자를 규제하는 것은 심심풀이 땅콩일 뿐이다.
  • 선거는 더 이상 필요 없다. 만약 온 나라가 대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면, 자기네들에게 뭐가 좋은 것인지 똥된장도 구분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공교육 교육과정은 대처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 의무 연구로 대체한다.
  • 야만인들과 알콜중독자들이 살고 있는 영국 북부는 핵폭탄을 떨궈서 파괴한 뒤 모든 지도의 해당 지역 표시를 'here be dragons'으로 바꿔 놓는다.
  • 스코틀랜드의 모든 천연자원을 벗겨먹는다.
  • 전국 모든 군(郡; county)의 성적표를 작성하여 순응 정도와 국가 전체에 반역하는 ‘악질분자’의 수를 파악하게 한다. 이 성적표의 점수에 따라 민영화된 날씨가 부여된다. 점수가 높아야 맑은 날을 더 많이 배당받을 수 있다.

장례식[편집 | 원본 편집]

대처의 죽음을 애도하는 영국 시민들.

2013년 4월 8일, 대처는 리츠에서 춤바람이 났다가 보수당원들의 감탄하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뇌졸중을 일으켜 밥숟갈을 놨다. 다행히도 영국 사람들은 언젠가 있을 대처의 죽음을 대비하여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 두었다.

스코틀랜드는 대처에게 경의를 표할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이것은 대처가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스코틀랜드에서 제안한 장례 방법에는 육군 제42하이랜더 블랙왓치 연대에서 파견 나온 캐넌포 21대로 예포를 발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블랙왓치는 공포탄 대신 고폭탄을 발사하여 대처의 관을 직격으로 맞출 것이다. 그러고 나면 술이 얼근히 취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관짝의 잔해에 대고 오줌을 싸 갈길 것이다. 대부분의 스코틀랜드인들은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경애해 마지않던 독재자에게 걸맞는 엄숙한 작별인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처의 송장을 처리할 방법은 아직 결론나지 않았다. 과학 저널 《사이언스》가 2009년에 발표한 백서에 따르면 실행 가능한 선택사항이 여러 개 존재한다. 우선 화장의 경우, 대처의 시체를 태우기는 끔찍하게 어려우며, 완전히 태워 없애려는 시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매장 역시 한때 고려되었다. 하지만 대처의 귀신이 매장 지역 주위에 출몰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쓰일 예상 비용이 너무 높았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처를 지름 2.5 킬로미터의 혈석(血石; bloodstone)으로 깔아뭉개야 하며, 그렇게 깔아뭉갠다고 끝이 아니고 250 명의 노동조합원을 산 제물로 바쳐야 봉인을 유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핵폐기물 저장 기술의 발전에 기대를 걸고 있으며, 영국 정부 예산의 2.5%가 매년 대처 저장의 해결책을 찾는 연구에 투자되고 있다.

도보시오[편집 | 원본 편집]

배경음악[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