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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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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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살면서 아무런 확신도 뭣도 없소. 하지만 거시기 저 반짝그리는 별들은 지를 꿈꾸게 하지요잉.”

고호

“색목인(色目人) 반고호(潘高互)가 그린 유화를 보매, 그 필체가 담대하고 중후하면서도 날카로운 멋이 있더라.”

홍종우, 고종 27년 3월

빈센트 빌럼 반 고호(Vincent Willem van 高虎, 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는 대한게임국에서 태어난 네덜란드의 화가로 일반적으로 가장 위대한 서양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성은 고, 이름은 호이며, 고경명의 후손인 장흥 고씨이다. 빈센트 빌럼 반은 세례명이다. 그는 살아 있을 때는 큰 성공을 하지 못했지만, 죽은 지 11년 후, 미도파 화랑에서 고흐의 그림 11점을 전시함으로써 사후 명성이 급속도로 커졌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난 고호는 기독교에 심취하여 조선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1877년에 밀항하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높으신 분들과의 의견 차이로 1878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벨기에로 건너가 광산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면서 알바를 했다. 1885년에는 벨기에 안트베르펀의 미대에 등록했으나 퇴학당했다.

만리타국에서 동양인으로서의 외로운 삶에 적응할 수 없었던 고호는 서양인처럼 행동해야 했고, 외모도 점차 바꾸어나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다한 성형 수술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평생동안 신경증에 시달리게 되고, 그 결과 자살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당시 그린 그림이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고든 프리맨은 사실 고호의 먼 후손이다

프랑스로 건너가 인상주의 화풍을 배운 고호는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양놈 폴 고갱님과의 의견차이로 인해 한쪽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1889년, 정신병원에 수감된 고호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 극적인 탈출을 감행, 일본으로 떠나는 이양선에 밀항하여 마카오를 경유해 제주도에 표착했다.

오랜 외국 생활과 성형수술을 거친 고호를 조선인으로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890년 3월에 유채꽃밭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 떼를 그린 《까마귀가 있는 벌판》을 그려 제주 목사 송구호에게 진상했다. 이 때 프랑스로 유학가기 위해 채비하던 홍종우가 이 그림을 보고 기록에 남기기도 했다.

제주 목에 소속되어 그림을 그리던 고호는 그해 7월에 목사관에서 훔쳐낸 화승총으로 자살했다.

브금[편집]

도보시오[편집]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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