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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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녀석이 나한테 위뷁을 던졌어. 아주 신선한 위뷁을. 난 그녀석을 잡고 싶다고! (어으으으)
송가이 제국
Songhai Empire.jpg
송가이 제국
송가이
Flag of Guinea.png Brasao da Guine.png
(국기) (문장)
표어: 중간 계급 없는 좋은 세상
국가: 메이드한테는 자유가 없다
2008-09-26 PM 10-01-56.jpg
공용어 (사실상) 송가이어, 불어, 한국어, 왜말
수도 가오가이거
큰 도시 코나크리, 팀북투
정부 군주제
초대 원수 손니 알리
현재 원수 아스키아(아스카) 3세
설립 15세기 즈음
화폐 송가이 프랑 (SGF)
종교 이슬람교, 광안대교 등
국가 도메인 .sgh

메이드 매매?는 우리가 원조였다.”

송가이 제국의 초대 황제, 손니 알리왕

송가이 제국(Songhai Empire.jpg, Songhay Empire)은 서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한 아프리카 2위의 초대제국으로, 수도는 가오가이거(Gao-gaiger)이다.

역사[편집]

본디 서아프리카 기니 땅에는 바카족(왜말: 馬鹿族)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너무 거시기같아서 왜국을 '닛폰'이라고 부르고, '1+1'을 2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900년대, 기니 땅에 수수족(듕귁어: 高粱族)이 바카족을 정벌하기 위해 사하라 땅에서 내려왔다. 이들은 바카족의 남자들은 대서양 연안으로 내쫓고, 여자들은 끌고 가서 자신의 메이드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13세기에 그 땅에서 소왕국들을 건국하여, 훗날에는 기니 지역의 해안지대에까지 지배권을 확대했다. 특히, 12~13세기 즈음에 번영한 소쏘 왕국(So So Kingdom)은 낚시로 아프리카 땅 안에서 매우 크게 부흥하였다.

하지만 소쏘 왕국은 애통하게도, 바카족과 손을 잡은 동쪽의 말리 지방의 투아레그족과 모시족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그렇게, 한동안 기니 땅은 말리인들과 바카족에 의하여 혼란과 무질서로 얼룩져갔다. 그러다가 15세기 경, 송가이족 출신의 정의의 사도인 손니 알리왕이 송가이족을 이끌고 적들의 본거지인 팀북투로 진격, 마침내 말리 제국을 무너뜨리고, 그 이름도 찬란한 송가이 제국을 세우게 된다. (참고로 승전 후, 손니 알리왕은 수많은 바카족과 말리인 여성 포로들을 임시적으로 국가의 메이드로 삼았다.)

하지만 제국이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국가의 경제력은 궁핍해졌다. 바로 예전에 소쏘 왕국의 주요 산업이였던 낚시가, 지금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빨리 좋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손니 알리왕은, 깊은 근심 속에 메이드들을 데리고 해안가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때마침, 포르투갈의 상인들이 송가이 제국의 해안에서 무역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당황한 손니 알리왕이 줄 것이 별로 없다고 하면서, 약간의 소금. 그리고 제일 모에모에한 메이드 한 명을 주자, 포르투갈 상인들은 그 자리에서 엄청나게 값진 물건들을 내려놓고는, 금과 소금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그 메이드만 데려가고선 港歌港歌를 하였다. 그러자, 손니 알리왕은 메이드 매매(賣買)가 국가 경제에 효과적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뒤부터 송가이 제국은 꾸준히 자국의 메이드를 외국에 수출·입하여 엄청난 떼돈을 벌어들였다.

그렇게 메이드 매매가 활발히 치르어지는 동안, 그는 팀북투에만 200여개의 학교를 설치하여 수많은 국민들이 모에를 알도록 하였고, 또한 노예 계급이였던 메이드들의 주요 종교인 이슬람교를 허용하여 그들의 반란을 잠재웠다. 그러다가 1492년, 훌륭한 왕이였던 손니 알리왕은 말을 타다가, 그만 강에 빠져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죽자 그 다음 왕이 된 자는 본명이 무하메드 투레라고 하는 아스카 1세 황제로, 그는 황제가 된 지 얼마 안되어 부르키나파소 지방과 니제르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는 승전 이후에 버려진 사막 땅을 개척하여, 엄청난 양의 금과 소금을 거두어 들여서 메이드를 팔 때에 함께 주었다. (가끔씩은 1+1 사은품으로 줬다고도 한다.) 그 뒤로도, 아스카 1세 황제는 교육, 경제, 문화, 군사 등에 각별한 신경을 씀으로써 송가이 제국이 막강한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후일에는 자신의 이름인 '아스카'를 따서, '아스카 왕조'(飛鳥王朝)를 세워 아들인 아스카 2세를 후계자로 지목,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한동안, 송가이 제국은 크게 번영하게 된다. 하지만 1590년, 자신의 주요 무역 상대였던 포르투갈스페인에게 캐관광 당하자, 제국 안에는 재고가 넘쳐나게 되고, 결국 정부는 물가를 낮추었으나, 제국 안의 사람들은 그것을 살 필요가 없었다. 왜냐고? 그런 거 한두 개는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는 수 없이, 정부는 영길리독일 같은 다른 나라들을 살펴봤지만, 이들은 송가이 제국과 무역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위에서는 불란서가 쳐들어오자, 결국 정부는 불란서 연방에 가입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58년, 불란서는 자신의 연방국에게 독립할 것인가, 혹은 계속 불란서 연방에 소속될 것인가를 선택할 권리를 주게 되고, 송가이 제국은 그 기회를 노려서 부활하여 예전처럼 메이드 매매로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였으나, 세계 인권 선언의 발표 이후로 메이드 매매가 위법화, 결국 한동안 기니라는 이름을 달고 살게 된다.

하지만 21세기 중반, FTA를 부산미소녀공화국과 처음 체결하였고 그 후 왜국과의 체결로 인해 미연시동인지를 수입하고 그 대가로 메이드를 수출할 수 있게 되자, 기니는 다시 국호를 송가이 제국으로 바꾸고 아스카 3세 황제를 옹립하여, 2055년에는 베냉을 굴복시킴으로써 옛날보다 더 나은 번영을 이루고 있다.

경제[편집]

초기 주요 수출 품목은 메이드로, 초기에는 수출만을 쳐해댔으나, 아스카 1세 황제 초기에 자국 안의 메이드 양이 줄자 왜국 등의 나라로부터 금과 소금을 주고 메이드를 대량 수입, 그리고 포르투갈 등의 나라에게 다시 수출하였다. 그 과정에서 금과 소금도 주요 수출 품목에 들어가게 되고, 송가이 제국은 그러한 중개 무역으로 엄청난 떼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불란서로부터 독립 이후에는 세계 인권 선언 때문에 메이드 무역은 중단, 금과 소금은 고갈되어 가면서 상당히 힘든 삶을 살았으나 그로부터 1세기 후인 2054년에는 부산미소녀공화국왜국듕귁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일대를 대상으로 FTA를 체결하면서 송가이 제국은 아프리카 경제 2위의 직위를 얻게 된다.

정치[편집]

전제군주제로, 현재 황제는 아스키아(아스카) 3세이다. 또한, 엄격한 신분제가 존재하는데, 그 순서는 '황제-국민-메이드'순으로, 중간에 귀족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한편, 메이드에게는 자유가 거의 없으며, 그나마 있는 자유라면 살 자유와, 이슬람교를 신봉할 자유밖엔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