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사이다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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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川汽水共和國
State of Inch'ŏn Cider Republic
인천사이다공화국
Chilsung.jpg Cider.jpg
(국기) (문장)
표어: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꼬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국가: 사이다 예찬가
수도 사이다 공장
큰 도시 인천 국제항
정부 공화정
초대 원수 우분투(牛糞投) 대통령
현재 원수 최달수 대통령
설립 1915년
화폐 사이다병 뚜껑, 사이다캔

사이다병 뚜껑 한개=100원

사이다캔 한개=500원

종교 무교
시간대 사이다 거품 양에 따라 달라짐
국가 도메인 .sda

인천사이다공화국은 1915년 사람들이 사이다강에 떠오르면서 태어난 국가이다. (여기서 인천(人川)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한게임국의 인천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제법상으로 대한게임국의 속령으로 대한게임국 국민들은 인천사이다공화국에서 치외법권을 주장할 수 있다. 특히 공화국의 국제 항구인 인천항은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인천기독공화국이 2009년 2월 28일 이후로 5년간 신탁통치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인천세계도시뷁스포의 영향으로 부활했다.

차례

[편집] 개요

인천사이다공화국은 1915년 과도하게 팽창한 대한게임국이 생식세포분열을 하여 생성된 소국(小國)이다. 생식세포분열을 한 결과 대한게임국의 반만 닮아서 반쪽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인천공화국의 국회의사당은 반만 건설되어 있으며 대통령 집무실도 반만 만들어져있다. 또한 국민들도 반으로 쪼개진 집에서 살고있어서 정식 명칭인 인천사이다공화국 외에 별칭으로 인천반쪽공화국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이것은 인천을 음해하려는 코사크들의 악행으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부르면 안 된다.

[편집] 인천의 사이다

인천은 항구도시로 유명한데, 특히 인천에 있는 천연자원인 사이다로 더욱 유명하다. 인천 시민들이 매일 소비하는 50톤의 사이다에 해외 수출량을 생각해도 대략 1억년 가량을 쓸 수 있는 사이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다를 매우 좋아하는 인천 국민들은 별식으로 사이다에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 사실 인천에서는 사이다를 먹지 않으면 국법에 위배되며 코카콜라의 간첩으로 오인받아 출국조치, 심하면 사형이 언도될 수도 있다.

인천 속담에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꼽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라는 말이 있다. 뜻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취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말로써 이러한 이유로 인천에 갈 때는 항상 사이다를 떠먹을 컵을 지참해 가도록 하자. 컵이 없다면 관광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일정량의 돈을 지불하고 컵을 빌릴 수도 있다.

[편집] 농업혁명 그 후

농업혁명이 일어난 후 인천은 크나큰 타격을 받게 된다. 농업혁명군의 침공으로 인천공화국의 80%가 쑥대밭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인천은 농사를 짓기에 좋은 기후가 아니었고 사이다는 농작물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는 것이 확인되어 농업혁명군은 재빨리 철수했다. 그 후부터 인천에서는 농업혁명군 격퇴를 축하하는 의미로 밥을 사이다에 말아먹는 풍습이 생겼다.


[편집] 대통령 선거

인천공화국의 대통령 선거는 정정당당한 승부 하에 이루어진다. 인천 앞바다에 떠있는 사이다를 빨대를 꽂아 가장 많이 마시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해 이때 컵은 쓰이지 않는다). 쿡케이원도 같은 방법으로 뽑으며 인천공화국의 12대 대통령이었던 김인백(金人魄, 1984~2083) 대통령의 경우 총 751리터의 사이다를 마셔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직후 사이다의 부작용인 탄산가스 역류로 인해 곧바로 사망했기 때문에 316리터를 마셔 2위를 기록한 13대 대통령인 최달수(崔疸隋, 2001~2142)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

[편집] 인천기독공화국의 침공

[편집] 인천항

인천사이다공화국의 인천항은 인천기독공화국 국민들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천기독공화국 국민에게는 인천항의 이용료가 몹시 비싸서 인천기독공화국 정부에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199x년 x월 x일, 인천기독공화국의 대통령 초다빗에게 신의 계시가 떨어져서 인천사이다공화국을 본격적으로 침공하게 된다. 선전포고를 거친 후 인천기독공화국의 10만 인천십자군이 국경인 제물포역을 넘어가게 되니, 이것이 사기전쟁(인천사이다공화국-인천기독공화국의 전쟁. 역사가에 따라서는 인천전쟁이라고 하기도 함)의 시작이다.

[편집] 제1차 사기전쟁

초다빗 대통령의 일방적인 선전포고에 분노를 한 최달수 대통령은, 인천기독공화국으로 사이다 수출을 일절 끊게 되고, 인천기독공화국의 일방적인 선전포고는 대한게임국 내의 다른 자치국으로도 알려져서 인천기독공화국은 경제적으로 대부분의 수출입이 막혀서 인천사이다공화국으로 침공을 한 인천십자군들에게 물자보급이 완전히 끊기게 되고, 인천사이다공화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으며, 오히려 이 사기전쟁에서 인천사이다공화국의 장군인 칠성(七星)장군과 긴(緊)장군의 활약으로 인천기독공화국의 중심지 중 하나인 주안역 인근을 점령하게 되었다.

[편집] 대한게임국에 불어온 웰빙바람, 그리고 전세 역전

분노한 인천기독공화국의 초다빗 대통령은, "하나님, 왜 저희를 도와주시지 않는 겁니까" 라고 단식기도를 하였고, 그 단식기도가 1000일 째 이어지던 날, 초다빗 대통령의 기도에 응답을 하였던지 마침 대한게임국 전체에 웰빙바람이 불게 되었다. 웰빙바람을 통하여 대한게임국 전체에서 콜라, 사이다 등의 청량음료와 맥도널드 등의 패스트푸드점은 직격타를 맞게 되었다. 인천사이다공화국 내에서는 개의치 않고 국민들이 사이다를 계속 마셨으나, 수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국가경제에 위기가 찾아왔다.

[편집] 제2차 사기전쟁

설상가상으로, 인천사이다공화국이 국가경제가 부도사태에 빠져서 나는에프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이에 인천기독공화국은 또다시 전쟁을 선포하며, 이번에는 한 손에는 총, 한 손에는 성서를 든 강화 십자군들이 대거 빠져나왔다. 게다가 국가 경제가 어려운 인천사이다공화국으로 인천기독공화국의 설교테이프가 계속해서 배달되어서 기독교로 개종한 국민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미 나라의 운명은 기울어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새 국경이자 요충지인 주안역을 지키고 있는 인천사이다공화국의 병사들은 맥없이 무너질수밖에 없었고, 인천기독공화국은 그 기세를 몰아서 주안역, 제물포역, 동인천역 인근까지 점령하게 되었으며, 인천사이다공화국의 영토는 인천항 부근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편집] 항복문서 서명

인천항의 인천사이다공화국 대통령궁을 완전히 포위한 인천기독공화국의 십자군은, 완전히 사면초가(四面草家 - 사방이 초가집으로 둘러싸여 있음) 상태에 놓인 인천사이다공화국의 대통령 최달수를 향해서 계속하여 설교와 기도를 하며 찬송가를 불렀고, 마침내 나라의 운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에서 인천사이다공화국의 대통령 최달수는 항복문서를 인천기독공화국의 초다빗 대통령에게 넘겨주고, 인천사이다공화국이라는 국가는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편집] 현재

현재 인천사이다공화국은 인천기독공화국이 신탁통치를 받게되어 임시정부를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인천세계도시뷁스포때문에 다시 인천사이다공화국의 국민들이 닥터피쉬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되었다. 경기기계제국이 인천사이다공화국이랑 아주 제대로 짜서 인천기독공화국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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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버전: 2008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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