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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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릐냐어 쓰능 걷듀 쟈유랴그。쳔햔 셔뮌들 쥬뎨에。^-^

롑흔리나

“취향이라는... 아니 자유라는... 존중해 달라는... ”

오타쿠
당신의 뇌가 급증하는 정보량을 이기지 못하고 폭주하는 모습 이 문서는 그 내용이 위키백과처럼 진지하고 어려워서, 읽는 순간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을 읽는 순간 가 흥분을 하여 당신의 두개골에서 뛰쳐나올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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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 글을 볼 자유가 없다. 그런데 왜 보고 있는 거냐? 썩 나가거라!

대하여[편집 | 원본 편집]

자유는 사람들이 갈망하는 쓸데없는 것 중 하나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사람들은 투쟁하며, 희생한다. 그리고 이것이 실패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면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다시 그것을 위해 싸울 준비를 한다. 실제로 그들은 절대로 헛수고를 하고 있다. 얻고 나면 허탈감에 후회하고 다시 처음 상황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유는 사람들에게 고귀한 무서운 존재다. 그것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척하며 기계적인 삶으로부터 벗어나 사람으로서의 억압된 욕망과 감정을 표출할 기회를 주어 사람을 폐인의 경지에 이르게 만든다. 여기에 당한 대표적인 사람이 오타쿠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자유라는 것은 때론 타인을 괴롭혀도 된다는 허락으로 둔갑하여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은 진정으로 원하고 있겠지만 와 같은 정상인은 자유를 진정으로 찾을 필요가 없다. 없어도 잘 누리고 있다.

자유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편집 | 원본 편집]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그리고 필요한 것인가에 앞서 자유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적과 나를 알면 백 번은 이기기는 개뿔, 그냥 무식한 사람들을 위해 알려주는 것이니 감사하게 생각하라.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자유라고 말하며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일에 얽매여 있으면 그것은 자유롭지 못한 것이며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 말에 따르면 자유라는 것은 모니터를 부수면서 발광하든 옆에 있는 사람을 패든 일절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알 게 뭐야와 같은 뜻이라면 내용이 중복되어 이 문서가 !!!即時削除!!될 수 있으므로 자유에 대한 보다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문서의 내용은 가끔 일방통행 제2법칙과 상통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코 같지는 않다!

자유의 정의[편집 | 원본 편집]

며느리도 모르기 때문에 완벽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크게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카더라.

객관적인 자유[편집 | 원본 편집]

매드 사이언티스트엔트로피 정의에 의하면 다른 사람이 볼 때 그 사람이 자유롭다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음'을 가리킨다. 즉 그것이 사람이든 주사위든 경우의 수가 많기만 하면 사람들이 보기에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1부터 4까지 나오는 정사면체보다 1부터 6까지 나오는 주사위가 더 자유롭고, 개팔자가 상팔자니 사람보다 개가 더 자유로운 것이다. 사람들간의 예를 들면 매드 사이언티스트평범한 인간의 차이를 들 수 있다. 개념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어떤 것이 자유로운지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일을 하는가에 관한 정보가 없는 상태라면 사람들은 당연히 후자가 자유롭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전자가 되느니 차라리 후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이 문제의 도마 위에 오른 물고기사람의 생각이 개입되면 그 정의는 때때로 뒤틀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의는 대체로 단체 단위에서 쓰인다. 엄격한 통치 아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 때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자유롭다는 것도 일반적으로 초딩들이 무개념의 세계로 갈 수 있는 폭이 매우 넓음을 의미한다.

주관적인 자유[편집 | 원본 편집]

위의 경우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일 뿐더러 그를 진정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부르며 감탄할 것이다. 그렇지만 초딩이 자기 자신은 어른보다 자유롭지 못하다고 좌절한다면 그 역시 초딩다운 짓이라며 믿지 못할 것이다. 사실 그들은 주관적인 의미의 자유를 말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푸념할 때 까기 전에 우선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더 효율적으로 까야 한다. 객관적인 자유와 주관적인 자유는 비슷한 것으로 근사할 수 있으나 이와 같이 가끔 정신 나간 일부 변종 인간들 때문에 극단적인 예외가 생긴다. 이것의 근본적인 차이는 그 자가 얼마나 정상적인가에서 비롯한다. 열등생이지만 대갈 순종 능력 시험을 반드시 국립정신병동에 들어갈 수준으로 보고 말겠다며 미친 듯이 악을 쓰는 수능 끝난 고3과, 정상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덕물 이외의 모든 것은 다 해 줄 각오가 되어 있는 가족을 무시하고 오타쿠의 삶을 유지하기를 갈망하는 한 소년으로부터 알 수 있듯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정신이 나가 있다면 자유롭지 못하다며 고민을 할 것이다. 반면 매우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는 와 같은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정신병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더 자유롭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람의 개념 존재 유무와 그 정도를 추구하는 지표에 더욱 가깝기 때문에 이 관점은 자유를 설명할 때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자유는 생각보다 오지랖이 꽤 엄청나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을 할 자유가 있다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을 해도 되면 욕할 자유가 있고, 를 해도 되면 쇼를 할 자유가 있다. 가끔 그것을 자격이라고 표현하는 멍청이가 있다. 그렇지만 살아갈 자격이 없는 무개념들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반례가 존재하므로 자유라는 말은 그와도 다르다. QED.

자유에 대한 오해[편집 | 원본 편집]

주관적인 자유와 행복의 차이[편집 | 원본 편집]

사람은 자유로부터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므로 이 두 뜻을 혼동했다면 멍청한 것이다. 행복과 주관적인 자유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즉 주관적인 자유와 행복 모두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대로 그 값이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유나 행복이나 그게 그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데도 행복하지 않을 때가 분명히 있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한데 행복하다고 말하는 인간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지만 대개는 이것을 불행이라 한다. 예를 들어 한 소년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게임을 실컷 하고 있지만 게임 내에서 말싸움이 붙거나 컴퓨터가 말을 안 들어 키보드 워리어혹은 키보드 크러셔의 형태로 진화퇴화할 수 있다. 혹은 이 소년에게 눈치가 있다면 실컷 게임을 하다가도 언제쯤 그만해야 마마몬의 크리티컬 공격을 회피할 것인지 고민할 수도 있다. 이 예에서 알 수 있듯 자유로움과 행복함은 다른 문제와 얽히면 그 차이가 명백히 드러난다. 그리고 자유는 행복보다 더 대답하기 쉽다는 것이다.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에 과부하 현상이 일어나 이라도 걸린 듯 버벅거리는 경우가 은근히 많기 때문에 확실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반면 자유로운 이유를 물어보면는 '시험이 끝나서 놀 수 있다', '할 일을 마쳐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와 같은 말이 술술 나올 수 있다. 그러니까 말싸움을 할 때는 자유롭냐고 물어보지 말고 행복하냐고 물어봐야 한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식으로 말이다.

자유와 무조건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의 차이[편집 | 원본 편집]

앞서 본 대로 자유의 객관적인 정의는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음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혼동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된다 하더라도 그저 자유로운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만약 그 대상이 척 노리스와 같이 무시무시한 살인마라면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히 건드린 사람을 죽여주고 싶을 것이다. 무조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것이 예상하지 못한 무시무시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만약 살인마가 아닌 평범한 다수를 건드렸다고 하더라도 다른 이의 곱지 않은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자유 역시 없다. 그리고 너는 변태와 같은 딱지를 뗄 수 없을 것이며,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이 힘을 합쳐 그에게 코렁탕을 먹여 주려고 애쓸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적인 혁명이 이 예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정원에서는 그렇게 코렁탕을 잘 먹이는 것이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편집 | 원본 편집]

자유를 혼자서만 누리다가는 오타쿠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굴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대의 자유도 인정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임이 필요한 것이다. 즉 누군가를 지배할 있는 자유가 있다면 피지배계층의 자유도 어느 정도는 존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들이 단두대로 목 자르기를 구사해 라부아지에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개념이 없는 이뮁박은 쫓겨나거나 단두대의 이슬로... 물론 상대의 자유를 인정하는 의미가 아니어도 자유라는 것은 다른 제약과 함께 딸려 올 수 있다. 피지배자들의 입장 따윈 개념과 함께 종이비행기에 싸서 안드로메다로 보낸다 치더라도 지배자는 어느 방향으로 그들을 굴려먹어야 잘 써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지배자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한 서울역 노숙자가 전철역 바닥에 누워 있을 때, 노숙자는 같은 노숙자끼리 만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가정하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있다. 즉 술을 마시든 싸움박질을 하든 경찰들조차 그들에게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짓이나 할 자유가 있지만 그 대신 자신의 신문지를 스스로 확보하고 음식 배급소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앞줄을 차지하는 일 등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자는 자유롭지 못한 자를 대변해야 하는 책임에 대해서는 자유롭다. 그렇지만 이 힘을 일정량 이상 사용하면 자유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파멸로 몰아넣게 되며, 그것 이외에도 가지고 있던 다른 자유와 함께 뺏길 수도 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폐인화라고 부른다.

자유를 만끽하는 방법[편집 | 원본 편집]

자유시간을 먹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자유시간을 늘린다. 그렇지만 가끔 드림카카오를 포함한 자유시간이 있는데 이것을 먹으면 역효과가 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자유롭다고 알려진 엔트로피에게 온갖 아양을 떨고 뇌물을 바쳐서 그의 마음에 들게 만들어도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결론[편집 | 원본 편집]

나 혼자만의 완벽한 자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면 위험하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기는 개뿔, 모든 인간들을 적으로 돌리다가는 죽거나 욕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상호적인 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자유가 인류에게 꼭 있어야 하는 존재는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 따위는 지나가던 개비둘기, 짭새 등에게 먹이로 주어도 충분하다. 다만 모든 인류가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고,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유가 있다면 이를 위해 투쟁하는 것 역시 자유지만 그딴 자유는 허상일 뿐이며 존재하지도 않는다. 인류가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릴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 자유를 누리는 것에 대한 책임 역시 인류에게 있는 것이다. 그래도 가지고 싶은가? 마음대로 하든가.

도보시오[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