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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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사전
궁궐사전, 경복궁짓느라 회방아치는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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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진지대부 위뷁대감 입시옵니다.
경복궁.

“궁 태우지마!! 씨발 불태우지마!!! 성질이 뻗쳐서, 궁 불태우지마!!!”

선조, 왜놈들이 경복궁을 불태우자 성질이 뻗쳐서

“세금걷지마!!! 씨발 세금걷지마!!! 성질이 뻗쳐서, 세금걷지마!!!”

1800년대 중반의 조선백성들, 경복궁을 중건하려고 세금을 걷자 성질이 뻗쳐서

경복궁조선의 궁궐중에서 으뜸가는 법궁이다.

역사[편집]

경복궁은 태조 이성계가 대고려제국의 공양왕을 내쫓고 1392년 대조선제국을 건국한 뒤 지금의 서울특별시을 도읍으로 삼아 그곳의 한가운데에 지었는데 설계자는 공신 정도전이고 터를 잡아준 사람은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이다. 조선 개국후 3년 뒤인 1395년에 완공이 되었고 그 후에도 다른 궁들을 지었다 카던데 실제로 가장 많이 쓴 사람은 세종대제뿐이고 다른 황제들은 별로 안 썼다 카더라. 진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놈들이 쳐들어와 한양의 모든 건물들을 불태워버렸고 겸보끙도 역시 왜놈들에 의해 큰 피해를 입었다. 경복궁이 불탄 뒤 다른 4개 궁들은 모두 재건되었으나 유독 경복궁만큼은 재건되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아니, 법궁인데 왜? 간단하다. 대조선제국은 동아시아 전체를 다스리고 있던 제국이었기에 이 동안에는 잠시 북경의 자금성에서 놀아제꼈다.

그렇게 쭈욱 방치된 후로 오랜 세월이 지나고 대조선제국이 망해갈 무렵 고종황제가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자 그는 떨어진 조선황실의 위엄을 드높이기 위해 경복궁을 중건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금을 모으기 위해 세금을 걷자 이에 성질이 뻗친 백성들은 크고 작은 난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중건된 겸보끙도 얼마못가 아관파천 사건 이후로 다신 쓰이지 못했다. 그후 1910년 일제강간기가 와 광화문과 흥례문자리에 조선총독부가 세워지고 그외 전각들은 별별 백괴스러운 명목들로 헐려버렸다. 다른 궁궐들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창경궁이 제일 극심했는데 창경원으로 이름이 바뀌고 동물원이 되어 그 처참한 광경이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후 2~30년간이나 계속되었다 카더라. 이것도 진짜다!

어쨌든 조선총독부 건물이 헐리고 다시 복원 사업을 시작했는데 YS가 광화문자리에 이상한 콘크리트덩어리를 갖다놓고 광화문이라 우겼으나 다시 복원사업을 실시해 지금의 목조건물로 돌아왔다. 그 백괴스러운 콘크리트덩어리들은 국립고궁박물관 뒤에 전시되어있다.

현재는 전체의 40%만 복원되어 있고 동궁과 자전, 교태전, 강녕전 사이에 있던 소주방도 복원중이다.

건물[편집]

원래 기록으로는 총 999칸?이였으나 왜놈들이 모조리 불태워 현재는 약 360칸만 남아있다 카더라. 이름은 거의 다 정도전이 지었고 아래 글들을 보면 세종대제가 경복궁을 가장 많이 개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곽[편집]

문루[편집]

광화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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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원래 이름은 오문(午門)이였으나 세종대제가 이름이 더럽다고(汚門, 더러운 문) 광화문으로 바뀌었다.
어떤놈은 가끔 씨밤쾅화문으로 부른다는데 알 게 뭐야.
김앵삼이 복원사업을 하면서 광화문처럼 생긴 콘크리트덩어리를 갖다놨으나 다시 복원사업을 재개하면서 원래의 목조건물로 돌아왔다. 그후 2010년 광복절에 공개되었다 카더라.
복원기간동안 몇몇 한글빠들이 현판을 한글로 달아야 한다고 지랄을 했으나 처절히 씹히고 말았다.
생김새
문루 지붕엔 남쪽을 상징하는 주작이 그려져있다
3개의 석축 아치문을 갖고 있다.
2층식으로 되어있다.
이랬던 콘크리트 덩어리가...
이렇게 복원되었다!
너무 멋져서 가끔 외계인들이 UFO를 타고 구경하러 온다는데 정확한진 며느리도 모른다
건춘문[편집]
경복궁의 동문이다.
천장엔 동쪽을 상징하는 청룡이 그려져 있다.
1층누각이다.
영추문[편집]
경복궁의 서문이다.
천장엔 서쪽을 상징하는 백호가 그려져있다.
역시 1층누각이다.
신무문[편집]
경복궁의 북문이다.
천장엔 북쪽을 상징하는 현무가 그려져있다.
창건당시엔 없었으나 세종대제가 후원과 통하는 용도로 만들었다던데 알 게 뭐야.


십자각[편집]

궁궐을 수비하는 망루이며 법궁인 경복궁밖에 없다.
원래 남쪽 동서로 두개가 있는데 서십자각은 일제때 헐리고 동십자각은 도로때문에 궐담과 똑 떨어져있다.

정전 일원[편집]

흥례문[편집]
광화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보인다.
이름과는 다르게 역사가 그리 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있다.
BIG정전?[편집]
이름 그대로 정말 크다.
2층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정전이 2층인 경우는 경복궁과 창덕궁밖에 없다 카더라.
임금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듕귁사신들을 접대하며 연회를 벌일 때등에 쓰였다.
여긴 위벩이 아니므로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근정문[편집]
근정전의 정문이다.
매우 근정전만큼이나 매우 크다.
사정전[편집]
용도
신하들과 회의를 하는데 쓰인다.
다른걸 생각했다면 너는 변태다.
만춘전[편집]
사정전의 동쪽에 있다.
왕의 봄·여름 집무실로 쓰였다.
천추전[편집]
사정전의 동쪽에 있다.
왕의 가을·겨울 집무실로 쓰였다.

침전일원[편집]

대전 일원[편집]

Confusion.svg 대전광역시와는 다르다! 대전광역시와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을 중심으로 4개의 소침전이 있는데 원래 행각들로 이어져 있었다 카더라.

강녕전[편집]
왕의 침전이다.
백괴스럽게도 나인들이 항시 대기하는 우물 정(井)자모양의 방으로 둘러싸여있어 매우 갑갑하다.
총 55칸으로 경복궁에서 가장 칸수가 많다.
용마루가 없는데 그 이유는 왕이 용이므로 용위에 또 용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라 카더라. 진짜다!
경성전[편집]
강녕전 서쪽에 있다.
소침전이다.
연생전[편집]
강녕전 동쪽에 있다는거 빼곤 경성전과 같다.
응지당[편집]
Guideline icon e1.svg 절대 운지 따위로 읽지 마라! 죽이는 수가 있다!
위의 두 소침전보다 작다.
원래 없었는데 흥선대원군이 중건할 때 지어졌다.
연길당[편집]
설명이 없으니 연길당 사진이나 봅시다.
응지당이랑 같다. 더이상의 설명이 더 필요한지?

중전 일원[편집]

이 구역은 왕비의 구역이며, 남자는 절대 출입 금지니라.?

교태전[편집]

이 건물은 왕비의 침전이며, 소문으로만 이곳에서 왕과 왕비가 섹스를 한다 카더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코렁탕행이다.

수문장청[편집]

동수문장청[편집]

궁궐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의 숙소이며 온돌방도 있는데 서수문장청의 반밖에 안되는 크기다. 뒤엔 영군직소가 있다.

서수문장청[편집]

동수문장청과 역할은 같으며 두배크기이다. 더이상의 설명이 더 필요한지?

영군직소와 초관처소[편집]

수문장청들과 역할이 비슷하나 병기창고로도 쓰였다 카더라.

궐내각사[편집]

말 그대로 궁궐안에 있던 각사들이다. 내각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카더라.

수정전[편집]

원래는 행각들과 부속건물들을 모두 갖춘 건물이었으나 다 헐려 수정전 본관만 남아있다. 원래 세종대제가 설립한 집현전의 터에다 흥선대원군이 지은거라던데 알 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