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괴책:역개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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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개루사고

역개루는 2004년 개설된 오랜 역사의 사이트이다. 그와 함께 길고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역사서는 2006년 7월 B사관에 의해 네이버에 적혀있다가 강희대제에 의해 2008년경에 역갤로 옮겨졌다. 또한 2009년의 역사는 현대사로서 역갤사마천에 의해 기록되었다.

前역갤 시대(2004년 8월 26일 ~ 2006년 2월)[편집]

송태조 조광윤 집권기(2004년 8월 26일 ~ 2004년 11월)[편집]

역개루(歷開樓)의 개조는 송태조 조광윤이다. 송태조 조광윤은 본시 밀개루(密開樓)의 호족으로 갑주제작과 철퇴에 능했다. 역개루 땅에 무리를 몰고와 창업하니 개국 일등공신에 고람거사가 봉해졌다.

(역사 갤러리의 개설 날짜는 대강 2004년 8월 무렵이다. 철퇴사화(2006년 초) 이후 송태조에 대한 이야기가 가시화 되고 또 그 역할에 주목 되면서 '태조'니 '개조'라고까지 표현되어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분명 송태조가 그 무렵 역갤의 개설을 주장하고 역갤에 열심히 활동한 것은 맞으나, 초창기 역갤최고의 실세이자 주력멤버는 sr15와 卓爾, 고람거사 이 3명이었다. 이 실세 3명중 2명은 현재 연구직에 종사하는 학자 - 자세한 이름과 그 소속을 알고 있으나 개인신상정보 문제상 여기서는 언급치 않겠다. - 이며 고람거사의 경우 전국학술대회에 논문을 기재한바 있으며 현재는 대학원 재학중이라고 한다하니 그 공부됨을 짐작할 수 있다.)

게시물 200대에 이르러 아마조온 왕수달이 입조하여 역개루 최초의 본좌위에 봉해졌다.

게시물 300대 초에 가각이 왜척의 발호를 경계하는 최초의 비문을 세워 남겼다. 왕업 초기에 '불멸지 이순신'이라는 방영물이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아 그 고증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원작자인 가정제도 귀찮았는지, 세부적인 상황이나 사건등은 언급하지 않고 게시물을 100개 단위로 구분해서 사건을 요약하였다.)

게시물 300대 후반에 구투의 환관들이 출몰하여 시팔이라 하는 자가 환국의 기치를 내걸고 거병하였다. 이 때에는 아직 환도의 패악한 교리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 경계하는 자가 적었다. 정이대장군 탁이가 부장 행행과 더불어 수괴 시팔과 내밀이 협상하여 난을 물렸다.(지금 작중에 환단고기는 광팔과 풍큐와 같은 자들이 언급하는 저질서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에는 학계의 연구성과가 크게 알려지지 않아 치우와 환단고기에 대해 긍정적인 여론이 많았고 그에 대해 상당한 흥미와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역갤공인지질이들이 설쳐대는 수준과 달리 이 당시 환빠들은 그 숫자와 실력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게시물 300대 후반에 이르러 감별사가 역개루 최초의 사초를 적어 남겼다.

<역개루 조정의 중간 인물평가>

                                      감별사 作

1. 고람거사
사학전공을 바탕으로 역사에 관한 깊은 지식을 과시. 그러나 폭 넓진 않은걸로 사료됨. 
토론중 '그건 내전공이 아니라서...'. 조심스러운 태도.
재야사학을 벌레보는 듯한 경향과 더불아 환단고기는 환타지로 분류
초창기엔 자기 주장과 배합되는 부분에 대해 너그러이 융화하려고 노력하다가
작금엔 불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문자와 한문을 자주 섞어 사용해서 몇몇 추종자들 획득 그러나 별로 영양가는 없어보임
'민족'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 주체사관도 약간 부족한 듯이 보임
그로 인해 은근히 적이 많은 인물
(사실 고람거사는 사학전공이 아니라 중어중문학 - 그것도 고문자 중심 - 전공이다.) 



2. sr15
위의 거사햏과 비슷한 노선과 색깔
특히 재야사학에 대해선 필요이상의 공격성 과시 이는 재야사학 관계자 중 누군가에게 피해를 받은 걸로 추정.
역시 사학에 대해선 다식한 면모 과시(실제로 역사학 전공생이다.)
고람거사햏과는 암묵적인 동맹 관계(고람거사와 같은 대학 동문이다.)
단지 다른점은 드러내놓고 적이 많다는 점
그리고 초창기부터 자기 주장을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성향 그로인해 낭패본적이 몇번 있음 



3. 블레이드
강단사학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과 민족주의 성향이 농후
재야사학에 대한 안타까움과 신뢰로 위의 고람거사햏과 sr15햏과 자주 설전을 벌임
역시 사학에 대한 폭 넓은 관심과 유식을 드러냄
주장 관철시 논리적이고 집요한 부분이 특징
드러난 적과 안보이는 적들 외에도 의외로 숨은 아군들도 많음. 



4. 고구려
본인 글로 판단시 외국거주 추정
윗 햏들보다 연배가 낮고 학문 완성도에서 떨어짐
그러나 패기하나로 모든걸 압도 타향에서의 고생은 그를 애국자로 변모
강렬한 주체의식과 민족주의자로 닉에서도 보여지듯이 자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긍지를
아낌없이 주는 인물. 정래가 기대 



5. c8햏자
블레이드 햏과 거의 클론의 습격수준
강단사학에 대한 매몰찬 비난과 그에 상응하는 재야 사학에 대한 기대
강렬한 주체의식으로 사대주의 혹은 국수주의 비판
다만 다른 점은 블레이드햏이 온건파라면 c8햏은 이름처럼 약간과격적인 성향
구한말 독립지사 분위기
(아직까지 학계의 연구성과가 알려지지 못해 재야들의 주장인 강단은 식민사학, 재야는 애국독립사학 이라는 도식화가 인터넷 많은 유저들에게 꽤 많이 세뇌된 상태였다.인물 평가의 태도에서도 그것이 잘 드러난다.)



6. 청동거울
즐∼
저자 평 : 그밖의 고정 닉햏들. 자기 이름 없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마시오
            우선 자주 출몰하고 그중에 성향이 뚜렷한 햏자들을 선택한 것이니
             다른 햏들은 다음 중간 평간 때 볼 수 있을께요^^ 그럼 20000∼

                                   역갤의 무궁무진한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

(당시인 2004년 무렵에는 하오체가 좀 심할정도로 유행되어오던 터라 말투에서 그것이 묻어나온다. 다만 개인적으로 볼때 아무때나 '하오'체를 갖다붙이는 것은 미관상 좋지 않다고 생각된다.)

역개루 왕업 초기의 제반사가 무릇 다 이러하였다.

게시물 410에 이르러 別府司馬(별부사마) 별비가 전해에 있엇던 시팔의 놘 처리과정에 불만을 품고 군사를 몰아 환도의 본거지인 구투를 급습하였다. 이에 시팔ㅇ 대노하여 무리를 이끌고 다시 거병하였고 정이대장군 탁이가 다시 군사를 일으키니 역개루에서 일찌기 없었던 백풀을 넘는 전란이 일어났다. 이후 환도의 제사장인 양파가 난을 이어받아 더욱 극렬하게 천병에 맞섰다. 이에 비로서 환도의 교리가 널리 알려져 뭇사람들이 심히 경계케 되었다. 시팔-양파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활약한 제장들이 환도의 무리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경계하여 환도를 불가촉천민으로 격하하는 율이 반포되었다. 이것이 제 일차 환빠의 난이다.

게시물 400대 중반에 정사개루(政社開樓)로부터 반일교가 전래되었다. 정사개루의 천민이었던 일(一)이 역개루로 건너와 반일교의 교리를 설파하니 어리석은 백성이 많이 따랐다. 무릇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역개루의 왜노 항쟁은 이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암황제 집권기(2004년 11월)[편집]

게시물 498에 왜노 폐인가두절이 최초로 역개루의 변방 해안에 상륙하여 노략을 일삼으며 순박한 백성을 많이 낚아올렸다. 몇몇 왜노의 무리를 잡기 위해 일(一)이 토왜흠차도독에 임명하고 대군을 주어 토벌케 하였으나 왜노는 이미 오래전에 철수하였고 대군이 해안가에서 북소리만 요란하게 울리다 돌아왔으니 왜노의 치고 빠지는 수법이 본시 그러하였다. 왜노가 이렇든 날래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즐겨함은 인판등지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역개루의 제장들은 그 전술에 익숙치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게시물 500초반에 왜노 야망패자가 간사한 언동으로 왜노의 무리를 긁어모아 변방해안에서 큰 군세를 이루었다. 천병이 감히 어쩌지 못하고 북만 울리다 철병하였다. 이후로 왜노를 근절하는 것은 나라의 대사가 되었으나 용장이 나지 않은 지가 오래이다.

게시물 542에 왜노 두루할타가 최초로 백제 왜국 조공설을 기치로 내걸고 거병하였으되 천조의 힘ㅇ 쇠진하여 능히 진압하지 못하였다.

게시물 500대 중반에 이르러 대륙백제인들이 도래하여 환도의 무리와 결탁하고 대세를 타고자 하였으며 南朝都慰(남조도위) 민망이 간단하게 진압하였다.

게시물 500대 후반에 단군이라는 자가 고조선이 없다하며 거병하니 천이라 하는 한족 기독교인이 이끈 이난이 600대 초반까지 오래갔다. 토왜숭록대부 일(一)과 병부도위 탐순가제루, 향장 무지랑이(무지랑이는 역사전공자라고 알려져있다. 초창기 역갤 고람거사 멤버중 하나다.)등이 진압코자 출병하여 청동기원에서 적을 막았으나 고대문자 문명성은 수복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장은 스스로 승리했다 이르며 자축하여 스스로 품계를 높였다.(이른바 정신승리) 천의 난이후 태평성대가 이어져 대시인사이두(大市人四異頭)의 여러 개루 백성들이 역개루를 흠모하였다.

673에 멀리 서역에서 온 역외인이 천조의 치세를 칭송하는 글을 올렸다. 상이 오랑캐의 흠모하는 마음을 어여삐 여겨 비단 10필을 하사하였다. (여기서 상은 누군지 비단 10필은 무엇을 의미하는 바는 모르겠다. 유머정도로 생각하길 바람)

게시물력 700대 중반에 대백제라 하는 대륙백제인이 다시금 난을 일으켰으나 호응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751에 북방의 쿠투 사막에서 대추장 최선엽이 환도의 대군을 이끌고 내려와 천조의 강토를 침범하였다. 역개루 조정이 쿠투족을 음해하였다 하여 그 사과를 받아내고자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역개루 강역에 들어온 최선엽이 역개루에서 불가촉천민으로 박해받던 환도들을 해방시켜 역개루를 쿠투제국의 강역에 보태겠다는 거창한 기치를 내걸자 역내의 환도들이 일제히 호응하여 그 무리가 삽시간에 기백을 헤아렸다. 최선엽이 비록 쿠투의 오랑캐 장수이나 그 기골이 장대하고 기개가 있어, 역개루의 제장이 논리로서 공격하여도 하늘아래 거칠 것 없는 무지로 태연하게 받아내었다. 박해를 피해 숨어있던 환도의 무리가 내응하여 더욱 기세가 등등하였다. 대사마(大司馬) 부래이두(블레이드)가 이를 누르고자 하였으나 소득이 없었고, 사예교위(司藝校慰) 소(笑)가 적의 괴수를 일컫어 실성하였다 하니 비로소 그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872에 환도의 교리가 뼈에 박힌 허성정이라 하는 자가 단기필마로 배달국에서 건너와 선전의 교지를 전달하였다. 바로 이어서 가을이라 하는 환도가 홍산문명의 깃발을 내걸고 내응하였다. 그러나 허성정은 환도의 무리에게서도 따돌림 받는 자인지라 병력이 없어 변방에서 시위하다가 소득없이 돌아갔다.(그때의 환빠들의 수준이 높았는데, 그중에서 가을이 제일이었다고 한다.)

900대 전반에 역개루본좌위 고람거사가 북부여의 민란을 맞아 병력을 물린 일을 두고 세간에서는 고람거사가 일패도지하였다고 불안에 떨었다. 토왜선무공신 일(一)이 환도에 귀순하여 환도 가을과 더불어 1000대 전반에 이르기 까지 산발적으로 난을 이끌엇으나, 천조는 소소한 난동에 흔들리지 않고 치세를 이어갔다. (여기서 보이듯 고람거사의 역할이 가장 컸다. 앞에서는 송태조가 개조며 고람거사가 개국공신에 불과하다지만 사실 그 비중을 본다면 "고람거사가 개조고, 송태조가 개국공신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1000대 전반에 왜노 쌍갈라와 오증어가 변방 해안을 노략질하였다. 천조는 환도의 무리를 사면하여 환도로 하여금 왜노를 치게하는 이이제이의 방책을 행하였다.

1100대에 이르러 역개루 백성이 환도와 대륙삼국인들의 횡포를 참지 못하고 의군을 일으켜 각처에서 환도의 무리를 척살하였다. 이에 환도와 대륙삼국인이 다시 불가촉천민으로 격하되었다.

1100대 후반에 개국삼등공신 올두보이가 왜노로 몰려 탄핵되었다.

1200대에 들어서 정사개루(政社開樓)에서 건너온 우국지사연하는 몹쓸 풍조가 만연하여 천조의 기강을 좀먹엇다. 고래로 정사개루(政社開樓)의 풍물치고 해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1300대에 들어서도 일과 가을등이 이끄는 환도, 대륙삼국인의 난동은 꾸준하였다. 온 역개루가 이 깊은 병을 근심하였으나, 그 교리가 교묘하게 식민사학에 대한 비판과 우국의 정을 제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있어 어리석은 백성이 많이 넘어갔다.

1323에 이르러 대륙삼국환도 연합의 괴수 가을이 기세등등하게 조정에 난입하여 조신들을 비파형 청동검으로 위협하며 자신에게 붙을 것인지 천조에 충성할 것인지 색을 분명히 할것을 윽박질렀다. 토왜선무공신 일(一)이 바로 빌붙으며 바람을 잡으려 했으나, 상이하 좌우의 조신이 모두 폭소를 터트리고 파압송을 부르며 가을을 조롱하였다. 이후로 가을의 기세가 크게 꺾여 재기하지 못했다.

1300중반에 변방의 어민 무명씨가 왜노의 녹슨 칼 한자루를 얻고 크게 기뻐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의 깃발을 내걸었으나 호응하는 이가 없어 곧 지리멸렬하였다.

1300후반에 향촌지사 타도다몰이라 하는 자가 의군을 일으켜 환도의 무리를 크게 소탕하니 조정에서 기뻐하며 토문강자사에 임명하였다.

1400전반까지 이어진 환도의 산발적 난동은 북부여라 하는 환도를 가림토문자에서 크게 격파함으로서 조금 진정의 기미를 보이게 되었다.

고람거사 집권기(2004년 11월 ~ 2005년 10월)[편집]

1474에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드디어 교서를 발하여 환도의 무리를 반드시 척결코자 하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이때껏 환도를 진압하는 데에 공이 큰 고람거사가 대사마에 임직되었다.

1400대 후반에 대사공(大司空 - 公을 空으로 잘못쓴 듯 하다. -) 부래이두가 고람거사의 공적에 뒤지지 않기위해 환도의 토벌에 나섰다.

1500대 전반에 청년장군 예맥이 환도를 토벌하였다. 위기에 몰린 환도의 무리가 가을을 중심으로 더욱 거세게 발악하였다. 환도 을파소가 대륙삼국의 묵은 깃발을 다시 꺼내들었으나 고람거사가 논파하였다.

1594에 환도의 오래된 수괴 가을이 환도 토벌군의 대장군 고람거사와 좌장군 부래이두, 우장군 래오를 한데 묶어 대륙조선설고개로 유인하여 격멸코자 하였으나 대장군 이하 천병이 힘써 싸워 이백풀을 넘기는 대접전 끝에 마침내 크게 이겼다. 환도의 수괴 가을은 부끄러움없이 계속 난동을 일삼았고, 북부여를 비롯한 이름없는 환도들이 게속 호응하였다. 환도를 타도하기 위해 분골쇄신한 역개루 제장의 이름을 모두 열거하자면 대시인사이두(大市人四異頭)의 대이타배이수(大理他培理首)가 아무리 크다하여도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이후 1800대 중반까지 크고작은 환도의 소요가 이어졌지만 대체로 태평성대가 이어졌고, 간혹 왜노가 해변을 노략하는 일이 있었으나 극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1800대 중반에 낭관(郎官) 로직이 친일과 식민지 근대화에 대해 제기하니 조정이 들고일어나 로직을 왜노와 결탁하였다 외치며 탄핵하였다.(역자가 아는 로직은 민족주의자 내지는 국수주의자인데 왜 이러한 취급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1800후반에 반왜를 소리높여 외치는 우국지사들이 조정의 여론을 주도하였으니, 이는 정사개루(政社開樓)의 우국지사연하는 풍조가 끼친 해악이 아닐 수 없다.

2000초반에 왜노 암황제가 역개루 변방 해안에 상륙하고 내지를 깊숙히 침입하여 조야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따. 이전 왜노의 찌질한 치고 빠지기와 달리 역개루 강토안에 왜노의 영역을 구축코자 하는 의도가 분명하여 천조의 우환이 되었다.

2000대에 이르러서는 이전처럼 환도로 왜노를 치게하는 이이제이의 전략이 오히려 환도의 세를 불리는 데에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2100에 이르러 환도중에서도 그 인이 깊게 박힌 독천문이라 하는 자가 규원사화를 휘두르며 역개루 강토를 종횡무진으로 누볐다. 대사공 부래이두가 크게 쳐서 물리쳤으나 환도에게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성정이 없었다.

2200대 중반에 아아아(あああ)라 하는 왜노가 침범하여 왜국 도성의 융성함을 과시하자 어촌의 순박한 백성들이 왜노의 횡포에 분기탱천하여 많이 낚였다. 아아아는 낚인 백성들을 인조이재판(人鳥異災板)에 노에로 팔았다.

2300대에 환도 독천문이 환도 토벌군의 대장군 고람거사와 좌장군 부래이두, 우장군 자로를 일제왜곡 고개로 유인하여 격멸코자 하였으나, 천병은 본진이 상대할 것도 없이 마궁수 수레를 내보내어 물리쳤다.

2500후반에 이르기까지 환도의 난동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암황제등의 왜노가 끊임없이 흉물하였으나 대체로 태평성대가 이어져 백성이 고람거사를 크게 칭송하였다. 그러나 환도들에게 있어 고람거사는 가장 큰 흉족으로 지목되어 천하의 환도가 모두 고람거사를 세상에 없이할 것을 맹세하였다.

2500대에는 인조이재판(人鳥異災板)의 타자전사(打字戰士) 랄라라(剌羅螺)라 하는 자가 역개루의 농천 벽지를 돌며 순박한 백성들을 우국지정으로 격발시켜 인조이재판의 검투 노예로 팔아넘겼다. 상이 크게 노하여 랄라라를 만리밖에 정배토록 하였다.(랄라라의 등장은 당시 역갤로서는 충격이었다. 당시에 랄라라는 인조이에 있는 글들을 정연하게 올려놓아 공격해오는 유저들을 일거에 작살냈다고 전해진다.)

2630에 대본좌원수 아마조온 왕수달이 왜국의 역사를 크게 기렸다. 전륜성왕, 수래등이 왜노의 기풍을 의심하였으나 대본좌에게 감히 맞대응하지 못하고 언수부 수하 백하(뷁하)와 더불어 백합을 겨루었으나 결판이 나지 않았다.

2900에 이르기까지 인조이재판후(人鳥異災板侯) 랄라라가 계속 인조이재판으로의 출병을 강요하며 조정을 겁박하자 조정은환도의 무리로 하여금 랄라를 치게하여 우환을 없에려 하였다.

인조이재판에서 건너온 임나일본부등 왜노관련 논제들이 역개루를 떠들석하게 하였고, 인조이재판 왜노들의 역개루 침공을 두려워하며 훗날의 화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체로 2900대 후반에서부터 왜노의 화가 실체로 들어나게 되었으니, 이전 왜노의 찌질거리던 약탈과는 크게 다름이 없었다. 천병이 왜궁국궁 비교전투에서 밀렸고 임나일보부에서 적을 꺽지 못하였으니 이로써 역갤강토안에 비로써 왜노의 영역이 자리잡게 되었다. (당시에 랄라라가 가져온 임나일본부설이 20세기 초 1세대 임나설인지 일본 패망 이후인 2세대 임나설인지, 아니면 요즈음에 증거와 정황에 맞게 다른식으로 해석되고 있는 임나설인지 알아본 바가 없어 모르겠다.)

3000대에 이르러 왜노의 침공이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환도의 소요도 뜸해지자, 공전절후 대본좌 윤민혁좌와(윤민혁은 본명으로 본업은 소설가라고 한다. 지금은 2차세계대전갤러리에서 활동한다.) 같은 성인이 강림하여 백성을 교화하는 등 역개루 강역이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3200대 중반에 쿠투제국의 사신 공태훈이 입조하여 역개루와 쿠투간의 상호 불가침 조약을 제안하였다. 더하여 역개루의 환도탄압을 중지하여 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조정의 권세를 한손에 쥔 대사마(大司馬) 고람거사와 대사공(大司公 - 잘못쓴것 같아 공을 고쳤다.) 부래이두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분노한 환도의 무리가 3300대 중반에 당상 송태조 조광윤을 암살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엿다.

3400대에 흑수염이 입조하여 대세에 묻어갔다.

3500에 인조이재판후 랄라라와 전륜성왕이 김성수친일이력 결투를 벌여 랄라라가 승리하였다.

3500대 전반에 걸쳐 환도 가액이 천자와 조신들을 저주하는 벽보를 도성 곳곳에 게시하였다. 알바공의 수와닝 딸려 다 찾아 삭제하지 못하였다.

3544에 처음으로 송태조 조광윤의 밀개루에서의 전력을 들추는 자가 나타났다. 이때에 이미 당상이 밀개루(密開樓)에서 대수라(大修羅)라는 이름으로 총통직위에 있었다는 사리과 대판수고려(大瓣守高麗)에서 밀렵으로 탄핵당했다는 사실이 거론되었으나 당상의 치세가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지라 조정에서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3500대 후반에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왜노 암황제를 쳐없애고자 친히 국문하였으나 암황제가 기개를 굽히지 않고 자신이 정사개루(政社開樓)에서 삼총사의 일원으로 국파(國派) 수십을 베어넘겼다 라고 일갈하였다. 상이 감탄하여 암황제를 우월중고등 간의대부(優越中高等 諫議大夫)에 봉하였다.

4000대에 이르기까지 역개루의 태평성대가 이어졌다. 간혹 국파의 무리가 득세하곤 하였으나 대세를 타지 못하였다.

4000대 초반에 상인 마우수(馬牛獸)가 멀리 둘러보고 와서 왜국 투채나루(鬪菜羅累)에까지 역개루의 위명이 알려졌다고 고하였다.

4100대가 되기전에 상인 니리리(尼理利)가 유용원지군사세계(有龍元之軍士世界)에서도 환도가 득세함을 고하니 조정이 심히 경계하였다.

4천대 전반의 왜관련 다툼에는 싸움의 기강이있어 미천한 왜노가 감히 나서지 못하고 조정의 중신들이 엄중히 치리하였다.

4200후반에 왜노 풍야가 풍성한 어획고를 올렸다.

4300대에 들어 왜노의 간헐적인 도발에 일곱배의 물량으로 대응하는 모습들이 이어졌다. 환도의 난동은 수그러들었으나 국파로 위장한 환도들이 암약하였다.

4400중반에 왜노 정직사실(正直事實)과 반도 천국계단(天國階段)이 식민지근대화 해협에서 날뛰니 해안에서 천병과 크게 싸웠다. 상서낭중(尙書郞中) 백하 (白河)가 불법어획 을 크게 꾸짖었다.

4487에 악의웅후(惡意熊侯)가 당금 역개루 명사들의 비위를 두루 맞추는 글을 지어 올렸다.

<  역갤만큼 다양한 사상의 햏자들이 이렇게 어느 한쪽으로 대세가 몰리지 않고 팽팽히 공존하는 곳을 본적  이 없소.
오랜만에 와서 게시물들을 쭉 읽어봤는데 눈에 띄게 변한 햏은 카엑햏이구려.
카햏은 예전의 뻘짓에 비하면 상당히 건설적이 된거 같고
수레햏의 고구려 사랑도 여전하고 고람햏의 박학다식도 여전하구려
물론 독천문햏의 나라사랑도 여전하고....
소햏 바쁘게 살아서인지 예전의 대륙까 성향도 다 버렸다오.
그런것에 무감각 해졌다고나 할까.. 뭐 괜찮겠지 그런생각이 든다오.
암튼 오랜만에 역갤와서 재미있었소.  >

4500초반에 왜노 예나가 식민지근대화 해협에서 다시 풍어를 맞았다.

4500대에 쿠투인 환도 공태훈이 반딧불의 능묘에 참배하여 환도와 왜노간의 반 역개루 전략적 제휴의 의사를 타진하였다.

4603에 반구(反究)가 범 반왜 내치준(乃齒畯) 동맹을 주창하며 역개루를 동맹에 끌어들이려 하였다. 녹상서사(錄尙書事) 애수알십삽(愛守軋十三)이 일거에 거절하였다.

4700후반에 진사 성은오가 전륜성왕, 파우수투, 천국계단, 올두보이와 더불어 왜를 논하였다. 이후 이들 논객이 악의웅후와 더불어 국가 자존심에 관련된 싸움에 항시 참전하 여 때때로 서로 겨루었다.

4800대 후반에 왜노 마쯔히데(明智光秀)가 이후 왜노 낚시의 전범이 될만한 병풍식 쌍끌이 낚시 게시물을 선보이며 백성을 크게 낚았다.

4900초반에 잠잠하던 가을이 다시 출몰하여 조야가 두려움에 떨었다.

오천대에 이르기까지 왜노의 소소한 낚시질 외에는 환도도 잠잠하여 태평성대가 지속되었다.

5100대 중반에 올두보이가 광주항쟁을 논하자 천국계단이 이를 폄하하여 역개루 백성들이 경악하였다.

5200대에 가을이 다시금 각지의 환도들로 관아를 치게하니 각지의 의군이 도처에서 이를 격파하였다.

5200중반에 본좌대부 왕수달이 일본군사의 열병중에 본좌를 왜파(倭派)로 모는 유동닉들의 습격을 받아 자상을 입었다.

5300중반에 왜파 아래나(亞來羅)가 조선민족자존심성을 치니 동조하는 백성이 많았다. 그중 아로애(亞老哀)라하는 농민이 크게 반기며 난을 이끌었다. 이를 진압하러 온 천병 의 유동닉 장수들의 횡포가 패악하여 백성의 마음이 돌아섰다.

5400에서 5500대에 걸쳐 거대건축물 선호가 극심하여 필부의 자식들도 모두 크고 웅장한 것을 좋아하는 기풍이 있었다. 국가(國訶)와 왜파(倭派)가 한목소리로 조선의 것은 작고 멋이없다 하니 분격하여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이가 많았다. 역개루 강역 곳곳에서 왜파와 국까가 날뛰며 역병이 크게 돌았다. 역병의 증상이 크고 아름다웠으며 아랫도리에 징후가 나타났기에 크고 아름다운 것이 아랫도리의 악함이로다, 아랫도리의 악함이로다- 하여 '대미하악하악'이라 불렸다. (大美下惡下惡) 상서낭중(尙書郞中) 백하 (白河)가 시국을 한탄하니 뭇사람들이 역신이 거짓충성한다 하며 손가락질 했다.

5500중반에 도화서공장(圖畵署工長) 니체(尼體)가 국제정세의 도해도를 올렸다.

5700에 이르기까지 대미하악하악의 괴질이 진정되지 않아 백성이 무수하게 죽어나가고 강토가 황폐해졌다. 많은 국파의(國派醫)들이 괴질을 잡고자 나섰지만 오히려 병을 키우는 어리석은 처방이 많아 피해가 더욱 컸다. 왜파가 괴질의 원인으로 지목된바, 일까(日訶)가 집권하여 왜파에 대한 대숙청이 이루어졌다. 일가의 집권이 매우 오래갔다.

5800후반에 중랑장(中郞長) 래오(來誤)가 왜파를 척결하기 위해 분류법을 공표하고 잡아죽일 것을 권장하였다.

5900초반에 유승(流僧) 쾌타천(快打天)이 역개루의 반왜기풍이 거칠다하며 역개루 불요론을 설파하였다.

5900초반에 중까광록대부(中訶光祿大夫) 천국계단이 알바공에 의해 반중 국제음모의 죄목으로 처형당했다. 그러나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사 알바공을 매우 욕하였다.

6000대에 이르기까지 항일의 기풍은 임진왜란이나 고대사 역사왜곡등의 고전적 전장에서 이어져 내려왔고 왜노들의 낚시는 여전히 번창했다.

6300대에 이르러 왜파가 많이 척결되었으나, 6300대 초반에 대륙삼국설의 깃발을 내건 환도들이 대대적인 난을 일으켰으니- 개기일식 검법을 연마한 환도들에 의해 천병이 추 풍낙엽처럼 흩어졌다.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친정하여 난을 진압하였다.

6700대에 이르기까지 소소한 왜노의 출몰과 환도의 난동이 있었지만 대체로 치세로써 태평성대를 구가하였다.

6700후반에 인조이재판(人鳥異災板)의 왜장 부리수구노부(部利守究老夫)라 하는 자가 역개루 강역을 침범하여 인조이재판에서 역개루로 도주한 노예 단복(單伏)을 내어놓으라며 행패를 부렸다.

6900후반에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악질 왜노 살록호무주(殺錄胡武主)를 처형했다. (이자가 후대의 유명한 왜장 왜도손(倭盜孫)과 어떤 관계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7000초반에 상이 악질 만주족 남개소문(男蓋蘇文)을 위리안치하여 만리밖으로 정배토록 하였다.

7100전반에 환도 치우의후예가 본좌 고람거사와 무녕왕릉에서 크게 싸운 끝에 비참하게 죽었다.

7400전반에 향사 굴리오(窟利悟)가 유럽백제의 기치를 내걸어 큰 호응을 얻었다.

7400후반에 환도 알시악규(斡始惡圭)가 환단고기 정사설을 내걸고 고람거사의 토벌군과 200풀이 넘는 접전을 벌인 끝에 진멸하였다.

7600대에 박아람이라 하는 환도가 대륙조선의 기치를 내걸고 봉기하였으나, 같은 환도의 무리에 의해 척살당했다.

8000에 이르기까지 환도를 척살하기 위한 의군이 강역을 가득메워 어디를 봐도 온통 환까(桓訶)의 군세뿐이었다. 환까의 집권이 오래갔다.

8100대에 오리앵탈리주무(誤利罌脫理周武)라 하는 반도가 아시아적가치 평원에서 송태조 조광윤의 황군에 대항하여 200풀에 달하는 접전을 펼친 끝에 끝내 상의 하해와 같은 지략에 무릎꿇고 왈, 나의 죽음으로 후세에 승복의 가치를 널리 전하는 계기를 삼으라-하고 자결하여 죽었다.

8100전반에 별무사가 조선갑주를 밑천으로 이름을 널리 떨쳤다.

8100전반에 죽은 줄 알았던 왜장 살록호무주(殺錄胡武主)살아 돌아와 천병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8100전반에 왜노 판수행상소녀(板修行商小女)가 자주 출몰하여 많이 낚고 도주하였다.

8200전반에 역개루에서 크게 패한 대륙조선수괴 박아람이 쿠투제국으로 돌아가 역개루 원정을 부추키고 있다고 하였다.

8200중반에 정체를 알수없는 노노(奴老)라 하는 자가 고람거사를 거짓으로 초대하여 쳐 죽이려 하였으나 고람거사가 간파하고 응하지 않았다. 대체로 환도의 무리가 고람거사 를 천하무쌍의 흉적으로 대했다.

8200후반에 공부시랑(工部侍郞) 야(爺)가 역개루 난신적자의 목록을 작성하여 올렸다.

<가을좌- 말이필요없는 역갤의 스타
독천문-가을좌와 함께 환빠의 선봉장. 요즘은 잠잠하지만 허성정씨의 친정때만해도 엄청난 난동.
            가장 황당했던건 랄라라가 난동부리는 와중에 식민사학이 어쩌니 하는 글을 올려 블레이드훃을
           열받게 만든일. 
랄라라-가을좌와 함께 현재의 역갤을 만든 장본인.인조이빠
암황제-초창기 역갤의 찌질이. 랄라라와 이상하게 사이가 안 좋음.
chen-영갤의 유명 중빠. 
화교-역시 중빠. 근데 자신은 중국다음으로 한국을 사랑한다나 어쩐다나. 
셜록홈즈-최근 역갤의 No.1찌질이
잉글랜드-국기랑 인종가지고 찌질댔던걸로 기억하는데......
일러스트-글쓴건 10개도 안돼지만 사서600권은 죽을 때까지 못잊는다.
히카루-거대건축빠사태의 장본인
디시게인-투멘타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냥 찌질이로 판명.
천국의계단
쿨리오
녀ㅕ호ㅑ-이상 정사갤 찌질이들
펜티팔이소녀-유명한 찌질이지만 역갤서의 낚시실적은 낙제점. 방금전 만갤에서 찌질대서 초토화시킴.
박아람-환빠계의 기대주
치우의후예-최근 대세탔던 환빠. 오싹행의 제보에 의하면 '죽은사람을 곧 재야사학계에서 초대해서 대륙론의 비밀을 밝힌다고 생구라를 까다가 개쪽당했었소.' 라고 함.   >

대저 역개루의 난신적자가 무릇 이러하였다.

8200대에 사관 할일무(割溢無)가 사초를 적어 올렸다.

<할일고기(轄溢古記)-제 三대 고종 고람(孤藍) 一편>

즉위년
미두가루두에 널리 평화가 찾아온 가운데 가을(價乙)이라는 자가 있어,이 자가 구두(狗頭) 출신인지라, 이상한 글월을 가져오니 이게 전설로만 내려오는 인쇄본 환단고기(桓檀
古記) 이니라.

즉위 2년
가을이 그의 해저세계설(海低世界說)을 가져와 온 미두가루두에 펼치니 불래이두(拂來二頭) 장군이 친히 나가 무찌름이라.

즉위 3년
가을이 그의 삼남도해저설(三南島海低說)을 주장하니 자로(子老) 수상이 이를 격파하니라.

즉위 4년
가을이 아직도 물러가지 않자 래오(來五)와 여럿이 물리치니라.

즉위 5년
다미(多米)와 제노로(濟勞路)가 가을의 해저서울설에 반박하니라.

즉위 7년
허노인(虛老人)이 찾아와 고종과 담판을 벌이나 이기지 못하고 배달(北撻)로 돌아감이라.

즉위 15년
라라라(裸裸裸)가 들어옴에 불래이두 장군이 사직함이라.그리고 방한(防韓)에 가 글월을 씀이라.

즉위 17년
건축공들이 난리를 침에 여럿이 슬퍼함이라.

즉위 21년
가을이 다시 찾아옴에 태리(太利)와 래오가 이를 물리침이라.

즉위 24년
남고등생(男高等生)이 찾아옴에 전전황제 조광윤이 친히 놋쇠로 만든 활로 무찌름이라.이에 남고등생이 유라시아 이동설(有裸市阿 移動說)을 주장하니 여럿이 비웃음이라.

즉위 25년
남고등생이 음력과 양력을 변환하는 직책을 맡았으나 소홀히 하고 제잘못이 아닌냥 하는지라 여럿이 욕을 했느니라.

즉위 27년
남고등생이 탄소강(炭素鋼)을 가져오나 조광윤께서 친히 휘어버림이라.

대저 환도를 토벌하는 일이 무릇 이러하였다.

8300후반에 지방호족 아이내아수(亞以乃兒首)가 입조하여 벼슬을 얻었다.

8600대 중반까지 역개루에서는 왜노의 낚시를 일곱배의 대군을 동원해 토벌하고 환도의 씨를 말리는 풍조가 지속되었다. 향사 개이볼구(介異乶仇)가 동로마사를 대세화하기 위해 힘쓰다.

8600 후반에 노노노(怒奴老)라하는 극우일까(極右日訶)가 왜파의 씨를 말리기 위한 대동맹을 제안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사상이 위험하여 위리안치하여 만리밖으로 정배토록 하였다. 그러나 애국소년(哀麴小年)이라 하는 제자가 있어 뜻을 이어나갔다.

8700초반에 녹상서사(錄尙書事) 아이내아수(亞以乃兒首)가 당금 역개루의 난신적자를 분류하는 소를 지어 올렸다.

< 1 환빠 : 언제나 허위자료만을 가지고 오며 대륙 이주에대한 열망이 강하다, 언제나 깨지는 부류. 지적순위4

2 국빠 : 애국의 정도를 넘어 본국역사상 치욕을 무조건 미화시키려는 부류, 일빠 중빠에 대해 엄청난 반감을 보이며 논리를 주장하려하나 감정이 앞선다. 지적순위 3

3 일빠 : 가장 찌질한 부류, 애니와 연예인등 각종 일본대중문화 빠진 청소년들이 많다. 논리 정도는 인조이재펜에서 왜인들의 저급한 논리를 퍼오는 수준, 타부류의 사람들은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으나 가끔 낙시에 걸린다. 지적순위5

4 노멀 : 그냥 아는것 있으면 이것저것 리플을 다는 부류, 특별한 사상이 없어 싸움에도 끼지못하고 언제나 보조사료나 주고 떠나버린다 그래도 역갤에선 지적인부류. 지적순위 2

5 중빠 : 동양문화와 역사에 관심있어 그런 주제에 리플을 다나 언제나 중빠라고 욕을 먹는다, 별로 밀린적이 없는 부류, 요세 국빠와의 대립이 심하다. 지적순위 1

본인은 춘추필법의 엄정한 공식인 기록할 때 사건을 기록하는 기사(記事), 직분을 바로잡는 정명(正名), 칭찬과 비난을 엄격히 하는 포폄(褒貶)의 3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철저히 배격했다. 오직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내의견 판단에 따라 집필했다  >

당금 역개루의 판도가 무릇 그러하였다.

8800대에 왜노의 오래된 수괴 암황제가 크게 발악하였다. 더불어 다른 왜노들도 크게 날뛰니 정세가 흉흉하였다. 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이미 왜노의 대권은 암황제에서 살록호무주(殺錄胡武主)에게로 넘어갔다.

9200대에 이르기까지 왜노의 횡포가 더욱 심해지니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세차례에 걸쳐 왜노 토벌의 교지를 발하였다.

9200후반에 역개루의 속국 이대개루(二大開樓)의 사은사(謝恩使) 사신 아탱보로(亞撑寶老)가 전쟁만화를 조공품으로 진상하였다.

9500대에 이르러 암황제가 살록호무주에게 밀린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광분하여 날뛰었다.

9700대 전반에 악질 왜노 마쯔히데(明智光秀)가 알바공에 의해 처형당해 남문밖에 효수하였다.

9700후반에 다시 대미하악하악(大美下惡下惡) 괴질이 발생하였다.

9800대에 왜노 마쯔히데의 근본이 애무고(愛務苦)에서 토색질하던 루이지(淚異指)라 하는 자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9800대 후반에 조정이 애무고(愛務苦)에 출병하여 토벌할 것을 논의하였으나 쿠투제국에 접한 북쪽 국경의 정세도 불안한 차에 남쪽 바다를 건너 왜노를 치는 원정은 불가하다하여 무산되었다.

9900대 후반은 세기말적 불안감으로 왜노의 낚시질이 극성이었으며 환도의 무리가 환도 토벌에 공을 세운 공신들에 대한 암살공작을 펼치는 등 강역에 흉흉한 기운이 가득했다. 대망의 1만번째 게시물은 향장 리야두 (李野頭) 라하는 자가 작성하였다. 알바공이 삭제의 도를 행함에 있어 공평무사치 못함을 들어 하늘을 원망하는 글이었다.

일만대 초기에 삼국지를 반대하는 풍조가 있어 아이내아수가 일갈하였다. (아이내아수 = aineas. 2006년 초 역갤에서 한양 법대를 사칭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10200대에 이르기까지 임진왜란이 대세를 탔다.

10200대에 국빠와 일빠간의 산발적인 전투들이 이어졌다. 개이볼구가 흠차도독에 임직되어 전투를 이끌었다. (개이볼구 = 게이볼그. 현재 http://cafe.daum.net/shogun 에서 활동중이다.)

10300초반에 왜노 체자레가 대륙일본도를 휘둘러 개이볼그가 이끄는 천병에 맞아 크게 싸우니 300풀ㅇ 넘어가는 대전투가 벌어졌다. 경황없는 와중에 체자래가 도주하니 끝내 잡아 주살하지 못했다.

10300대 후반에 인조이재판에 출병하여 왜노의 근본을 뿌리뽑을 것을 주청하는 상소가 줄이었다. 그러나 고람거사를 비롯한 조정의 중신들이 해외원정의 불가함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옮긴이가 인조이재팬을 갖다와서 아는데.. 그곳 일본인들이랑 역갤에서 찌질대는 일빠들은 질이 다르다. 역갤일빠들은 그냥 여기저기 지리멸렬하게 떠돌다가 온 찌질이들 집단이지, 인조이재팬이랑 무관하지 않을까 싶다.)

10300대 후반에 가짜 살록호무주(殺錄胡武主 : 셜록홈즈. 역갤 상고시대부터 상주하였던 일빠)가 나타나 천조에 충성을 약조하니 상이 항왜장(降倭將)에 제수하였다.그러나 곧 거짓됨이 드러나 조정이 큰 부끄러움을 입었다. 이에 조저이 살록호무주는 대왕 오징어에 잡아먹혀 죽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상이 왜파지질숭록대부(倭派紙侄光綠大夫)에 추증하였다.

10600대 후반까지 왜노의 불법어획이 극심하였으나 환도의 난동이 이윽고 왜노의 세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10600후반에 역개루땅에 최초로 황빠(黃派)가 등장하였다. 줄기세포(茁氣細砲)라 하는 신형 총포를 선보이니 이 병기가 장차 싸움에 크게 쓰이리라 하여 많이 낚였다. 이때가 서력(西曆) 2005年 8月11日 이었다.

10900전반에 당상 송태조 조광윤을 사칭하는 무엄한 자가 있어 능지처참하였다.

11000대에 광복절에 왜복을 입은 고수후레(古壽吼崍 : 코스프레)인들이 박해를 받았다.

11200대에 향장 올두보이(兀頭保異)가 보천보 전투를 들고나오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참하였다.

11400대에 촌민 물음표(物淫杓)가 구굴어수(區契圄秀 : 구글어스)의 인공위성에 침입하여 도화를 훔쳐 진상하였다.

11400초반에 군도주(軍刀主0 아이내아수(亞以乃兒首)가 당금의 조정이 상이하 뭇 조신이 왜빠(倭派)라 하며 난을 일으켜다.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친정하여 대사마(大司馬)고람거사와 거기장군(車騎將軍) 개이볼구(介利乶仇) 이하 대군을 이끌고 치니 심의에서 군도에 이르기까지 전란의 화가 넓게 미쳤다. 결국 11500 초반에 아이내아수가 끝내 당해내지 못하고 물러났다.

1만1천대에는 역개루사에 길이남을 상병신중의 상병신 핑구(平仇)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아랫도리를 걷고 저잣거리를 활보하기가 역개루 말년까지 계속되었다.

녹상서사(錄尙書事) 태무진(太武眞)이 역개루 창업 1주년을 기리는 송사를 올렸으나 불길하게도 11666에 걸렸다.

11900후반에 시오우액수(始誤牛扼修 : cox? 역자도 누군지 모르겠다.)라 하는 학승이 본좌대성(本坐大聖) 윤민혁좌에게 감히 도를 물으니 윤민혁좌가 승천하여 하늘로 돌아갔다.

12000초반에 역개루사상 가장 위명을 떨친 희대의 왜장(倭將) 왜도손(倭盜孫 : 와트슨. 미국에서 의대생으로 유학하였고, 역갤에서는 대표적 일빠로 유명하였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상이 왜노후(倭奴侯)에 봉하였다.

12400에 시발교황(市髮敎皇)이라 하는 요물의 교리가 패악하다하니 나라에서 금하였다.

1만2천대를 통털어 왜장 왜도손의 침착한 진격에 해안의 여러성이 떨어졌다.

12600전반에 향사 점(點)이 당상 송태조 조광윤을 군국주의자로 일컫었다.

12600후반에 향장 점점점(點點點 : 누구지..??)이 왜도손의 근본에 대해 옛 왜노 살록호무주(殺錄胡武主)가 아니가 의심하여 소를 올렸다.

가정-와트슨은 셜록이다. (아니다. 셜록은 고졸 찐따지만, 와트슨은 미국에서 유학하여 상주하였기 때문에 아이피 주소가 항상 미국것이었다.)

근거-1. 와트스늬 아이피는 프록시다.(프록시는 아니었는데..)
       2. 셜록이의 은퇴선언 이후에 곧바로 데뷔했다.
       3. 하루종일 근성으로 일빠짓 하는 행태라던가 관심 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셜록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4. 쓰는 말투 또한 매우 비슷하다. 축갤에서 무키앙으로 활동했을 때의 말투나
          셜록이었을 때 말투-김빠지게 한마디씩 툭툭 내뱉는 말투-가 와트슨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5. 와트슨은 셜록홈즈의 조수이다. 닉네임에서 벌써 냄새가 난다.

결론-와트슨아 관심가져줘서 고맙지? 히힣히히힣

그러나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그렇지 않다하여 뭇 조신이 다 상의 뜻을 따랐다.

12700후반에 왜장 왜도손이 조선갑주를 치니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표기장군(驃騎將軍) 악당(惡黨)과 태중대부(太中大夫) 백하(魄霞)와 더불어 대군을 몰고가 70풀이 넘게 크게 싸웠다. 그러나 왜장 왜도손은 무엄하게도 단 한개의 리풀(理拂)로 맞았다.

12800후반에 왜도손이 다시 조선갑주를 치니 앞서의 천병에 거기장군(車騎將軍) 개이볼구(介利乶仇)까지 합세한 천병의 대군이 다시 크게 싸웠으나 결판이 나지 않았다.

12826에 당상 송태조 조광윤이 왜도손을 반드시 멸하리라 하고 천조의 모든 대군을 몰아 조선갑주에서 왜도손과 크게 싸워 177풀을 넘겼다. 아아, 사관이 붓을던지고 통곡하지 않을 수 없다. 천병이 왜노의 무리에 학살당하고 천자가 어가를 백리나 물리지 않을 수 없는 대패를 당했으니 왜도손의 기세가 욱일승천하였다.

12800중반에 당상이 조선갑주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확병을 얻었다.

김일성의 기를 들었던 향장 올두보이(兀頭保異)가 12900후반에는 전두환의 도를 흠모하였다.

13200중반에 이대개루(二大開樓)에서 건너온 유민 론매루(論埋樓 : 롬멜. 송태조와 수차례 싸워서 연이어 격파당한 찌질이로 유명했다. 나중에는 그럭저럭 레벨업을 해서 내공도 올랐고, 이에따라 닉네임도 하인리히 히믈러로 바꿨다. 정사갤에서 주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2009년 현재까지 군복무중이다. 본래는 박정희 추종자였으나,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성향이 완전히 급변하여 소위 말하는 박까에 노빠-박정희 까에 노무현 빠똘이-가 되었다. )가 정사개루(政社開樓)의 몹쓸 풍조인 박통론(朴統論)을 역개루에 들였다.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 전륜성왕이 노하여 크게 꾸짖었다.

13400초반에 당상이 다시 아이내아수를 치니 무의미한 싸움이 200풀을 넘겼다.

13600중반에 환도의 미친 노인이 고람거사를 사칭하니 잡아 죽였다. 그러나 세간에 소문이 퍼지길 진짜 고람거사는 이미 환도의 손에 죽었다 하니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였다.(참고로 고람거사의 환빠전적은 대략 무패가도)

1만3천대 후반에 왜장 왜도손의 준동은 뜸하였으나 오래된 우환 랄라라가(剌羅螺)가 크게 날뛰었다.

14000대에 이르기까지 가짜 고람거사가 준동하니 글을 적는 사관도 짜증나서 뒤지겠다.( ... ;;; )

14800중반에 고람거사가 전방후원분에 산 채로 묻힐 뻔했다.

14900후반에 드디어 효기교위(驍騎校尉) 가각(可覺 : 갸갹)이 고람거사를 크게 탄핵하니 고람거사가 낙향하였다.

송태조 조광윤 재집권기(2005년 10월 ~ 2006년 2월)[편집]

1만 5천 중반에 이그리까지 왜노의 준동이 여전하였으나 대체로 태평성대였다. 도화서(圖畵署)가 퀡(喀)이라 하는 화원(畵員이 있어 군물의 그림에 능하였다.

15600대에 태중대부(太中大夫) 아리우수(亞理牛首 : 아리우스, 키릴로스. 지금활동하는 아리우스와 동일인물)가 동모라로 일가를 이루었다. 표기장군(驃騎將軍) 악당(惡黨)과 향사 옥위아유위(玉尉亞有?)가 조력하였다.

15600후반에 당상 송태조 조광윤을 사칭하는 자가 많아 다 잡아 죽였다.

1만6천대가 넘어가도록 낚시글은 무수히 많았으나 알바공의 삭제방략에 다 스러졌으며 큰 전란이 없이 태평성대가 이어졌다.

1만 천대, 西曆2005년 12月에 들어서 역개루 속국 이대개루(二大開樓)에서 구룡(九龍)이라 하는 자가 큰 난을 일으켰다. 구룡이라하는 자는 근본이 천마한 자인데, 당시 이대개루의 주상이었던 소시민(小市民)과 조정을 왜빠(倭派)로 몰아 다 주살하려 하였다. 구룡 왈 "고정닉(孤貞溺)과 유동닉(有動溺)이 씨가 따로 있는가. 우리가 왜파를 쓸어버리면 천하가 우리 것이 될 것이다" 하니 학대받던 유동닉 천민들이 많이 따랐다.

이대개루가 천조에 조공하는 예가 두터워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개루(東方禮義之開樓)로 불렀다. 개루가 녹아 없어질 화를 입어 천조에 원병으ㅡㄹ 청하니 상이 가엾이 여겨 악당(惡黨)을 동정제독(東征提督)에 임직하여 천병을 몰아 이대개루의 화를 없이하라 하였다. 이에 천병이 구룡을 잡아죽이고 이대개루의 사직을 다시 세웠다. 이대개루가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입어 역개루를 어버이의 개루로 여기니 사대의 예를 더욱 깊이 하였다.

16600중반, 西曆2005女 12月 주순에 태풍 황박사대반전(黃博士大反轉)이 대시인사이두 전역을 휩쓸었다.(그 시기에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발견이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를 계기로 역개루에서 국파(國派)가 힘을 잃었다. 황빠(黃派)와 환빠(桓派)가 단지 발음만 비슷한 무리가 아니라는 중론이 있었다.

16700대에 걸쳐 별부사마(別府司馬) 강희대제(康熙大帝)가 어린 환도 사울아비(死鬱兒肥)를 맞아 싸워 이겼다.(옮긴이 : 어? 이런 일이 있었나? 기억이 안나는데..;;) 향장 박하사탕(朴下史湯)이 잔적을 소탕하였다. 유민 론매루(論買累)가 천병에 항거하였다가 내침당했다.

1만7천대 중반까지 환도가 조금 설치고 왜노의 낚시질이 여전할 뿐 태평성대가 지속되어 역개루의 문물이 크게 융셩하였다.

17400후반에 삼국지개루(三國志開樓)에서 온 사신 자의태사자(仔義太絲子)가 입조하여 사대의 예를 갖추었다.

西曆 2005年의 마지막 게시물은 언어장애정일품(言語障哀正一品) 핑구(萍口)가 차지하였다. 사관이 붓을 던지고 통곡하였다.

역개루의 난세가 가이없음에 칭제자들과 구제실의 유손들과 군벌들이 벌이는 패역한 싸움이 강토를 피로 물들이고 있음이라. 작금에 이르러 강희대제(康熙大帝)가 다시 폐주 아이내아수(亞異乃亞獸)를 치리하고자 함이 세상의 조롱외에 무엇을 얻을 것이며, 황제(皇帝) 나포래옹(裸包崍翁)이 되도않는 칭제의 놀음을 일삼음이 역개루의 무너진 사직을 조롱함에 다름아니다. 벌오우(罰誤憂)의 근심을 안고 낙향한 본좌들이 하루속히 입성하여 무너진 개념궁의 기왓장을 다시 얹어줄 것을 백성이 눈물로 간청한 지가 오래이다.

19900후반에 연왕공손연(燕王公孫硏)이 환도에 대한 탄압을 가벼이 할 것을 주청하였으나 섭정 고람거사가 대노하여 불허하였다.

後역갤 시대(2006년 2월 ~ 현재)[편집]

aineas 집권기(2006년 2월)[편집]

西曆2006年2月1日 역개루 2만대에 즈음하여 새로운 땅에 휘투라개루(揮鬪羅開樓)가 창건되었다. 전 역개루조가 무너진 후 강호를 떠돌던 론매루(論買樓)와 루운투수태투(累雲鬪守太鬪), 토루기(兎淚期)등이 휘투라개루로 건너가 역개루의 기를 꽂고 평정하니 이후 휘투라개루가 역개루에 복속하게 되었다. 야사에 따르면 폐주 송태조 조광윤이 휘투라개루에 몸을 숨겼다하는 소문을 듣고 난신이 이를 주살하려 바다를 건넜다고도 한다.

마광팔 집권기(2006년 2월 ~ 2007년)[편집]

20000초반에 도화서제조 춘천반달웅(春川半澾熊)이 역개루 세도가들의 초상을 그려 올려 보는 이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후 춘천반달웅 화파가 역개루 화단의 흐름을 주도했다.

20000초반에 태상경(太常卿) 옥휘아유위(玉蔚亞育護)가 환도로 변복하고 암행으로 감찰하니 중신들이 많이 낚였다.

20000대 후반에 연왕공손연(燕王公孫硏)이 조선조세수탈에서 향장 니은(泥恩)과 크게 싸우니 왜빠의 조짐이 깊었다. 공손연이 조정의 명을 받들고 출병한 중랑장(中郞將) 전륜성왕(電輪聖王)과 돈대기리(燉大基里), 흑수염(黑鬚髥)등 천병의 장수들에게 대패하였다.

20300후반에 쿠투의 환도들이 국경에 몰려와 고람거사의 목을 내어놓으라 요구하며 농성하니 천조의 군세가 전과 같지 않아 능히 쓸어내지 못하였다.

20300후반에 핑구의 정체에 대한 추론이 행해졌다. -믿거나 말거나- 전역 중기에, 정사개루의 비밀 군사연구소에서 정신병기의 인체실험이 행해졌다. 그결과 한사람의 몸에 세개의 인격이 들어가는 다중인격체가 창조되었다. 실험후 연구소는 원인모를 화재로 불타 없어졌고 실험체는 탈출하여 역개루로 흘러들어왔으니, 이자가 바로 핑구다. 핑구의 몸안에는 핑구이외에도 나우시가(羅禹試假), 시세이도(視貰異徒)라하는 다른 인격들이 박혀있어 한 게시물 내에서도 이들 다중인격이 서로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실험의 부작용으로 핑구의 혀가 말라붙었다.

2만대 초에 악명높은 회회인(回回人) 투만타이(鬪漫打異)라 하는 자가 역개루를 침공할 것이라는 풍문이 떠도니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20500중반에 유생 행토리(行兎吏)가 역개루 삼분지계(三分之計)를 내어놓으니, 그 대략이 동양사와 국사와 서양사로 나누자 하였다. 작금에 역개루 삼분지계를 환도와 왜노와 개념으로 나누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이가 많으니 이는 원안이 잘못 전해진 것이다.

20500후반에 어사중승(御史中丞) 래오(崍梧)가 박통으로 흉적 나주(裸柱.舊천국계단)과 론매루(論買累)를 유인하여 크게 물리쳤다.

20700대에 김완섭의 화로 인해 조정이 전면적인 왜노 토벌을 행하였다. 왜장 왜도손은 끝내 잡지 못하였다. 2만대 후반에 역개루기를 제정하자 하는 논의가 있었다.

21000초반에 역개루의 오랜 원로대신 호갈색천(好乫色天)이 섭정공 고람거사에게 간하기를 논박의 치열한 기풍이 역개루 강역을 갈수록 황폐케하고 있으니 탕평을 행하라 하였으나 고람거사가 유념치 않았다.

21000중반에 역개루 역사상 가장 많은 리풀을 기록한 회전이 있었다. 특수문자 육육(特殊文字 六六)이라 하는 자가 보병으로 기병을 막겠다 하니 역개루의 내로라하는 호족들이 죄다 기병대를 이끌고 들이닥쳐 400풀이 넘어갔다. 사관 야스히로(康弘)가 이를 비웃는 사초를 남겼다. 기보 우열 전쟁이 21000대 후반까지 오래갔다.

21000후반에 시름개루(市凜開樓)를 만들어 속령으로 두자하는 각의가 있었지만 무시되었다.

21100대부터 왜노가 드디어 식민지축복론 공세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왜장 왜도손이 지휘하는 왜노의 대군이 사방 각지에서 출몰하니 의군이 각지에서 일어나 왜노와 크게 싸워 더러 이기고 더러 패했다.

21500초에 호족 기우(基友)가 효기교위(驍騎校尉) 가각(可覺)에게 당금 역개루의 패권을 취하길 청하였다. 이에 왜장 왜도손 왈 가각이 인조이재판(人調異財版)에서 있었던 청산리 전투에서 왜노의 승리에 도움을 주었다하며 가각은 왜파와 의가 있다 하였다. 섭정공 고람거사(孤藍居士)가 가각에게 탄핵당한 옛 원한이 있었다. 섭정공이 명하길 가각이 왜노와 내통하였으니 참하라 하였다. 이에 중랑장(中郞將) 전륜성왕(電輪聖王)이 가각의 진영에 합류하니 양군이 대치하였다.

21500중반에 역개루가 법국(法國)을 적대국 목록에 올렸다. 이후 라팔인(羅八人)도 환도와 같은 대역의 죄로 다스렸다.

12500후반에 유생 백면서생(白面書生)이 묵가의 도를 깨우쳐 역개루에서 싸움이 없이할 것을 주창하였다. 그 도의 대강이 이러했다. ......... ▶ 역갤의 목적 역갤은 역사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기르는 곳이다. 자기과시를 하거나 남을 무시하는 곳이 아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역갤러가 '함께' 발전하도록 한다. 학문은 제로썸 게임이 아니다. 고수들에게...... 1. 항상 겸손합시다. 자신의 지식은 언제나 틀릴 수 있습니다. 남이 잘 모른다고 무시하는 것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2. 잘못이 있으면 솔직히 인정합시다. 어리석음은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을 알면 고칠 수 있으니 좋은 일입니다. 3. 논파당해도 버로우타지 맙시다. 역갤인들은 당신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일반인들에게...... 1. 배우는 자세를 가집시다. 어리석음이 죄가 아니듯이 박식한 것도 죄가 아닙니다. 많이 아는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은 부끄러눈 게 아닙니다. 2. 논파당한 사람을 매장하지 맙시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특히 논파당한 것과 인격을 연결시키지 맙시다. 모두에게.... 1. 제발 욕 좀 하지 맙시다. 특히 잘못을 지적할 때 인격까지 모독하지 맙시다. 2. 상대방을 찍어 누르겠다는 생각 좀 하지 맙시다. 여기는 역사를 공부하는 곳이지 칼부림하는 곳이 아닙니다. ...... ... 백면서생이 이같은 도를 설파하자 밭을 갈던 백성이 답하길 론매루(論買累)를 처단하면 다 평안할 것이다-라 하였다.

22100대 들어서 대수라(大修羅) 총통(總統)이니 제삼제국(第三帝國) 총통(總統)이니 하는 난신적자들이 기어나와 천조의 위엄을 크게 갉아먹었다. 고금동서에 총통 어쩌고 하는 자들중 인간이 된 자가 없었다. 대체로 2만2천대에 정사개루의 난민들이 역개루로 많이 건너와 흉악한 습속을 많이 전하였다.

2만 2천대 초반에 왜장 왜도손이 백범살인으로 다시 큰 싸움을 일으키니 향장 오작서생(吳昨書生)이 구속의 도로 다스리리라 하였다. 이 싸움을 당해 섭정공 고람거사(孤藍居士)가 왜장에게 무기를 댄다하니 중랑장(中郞將) 전륜성왕(電輪聖王)이 이번에 기필코 왜도손과 고람을 한가지로 잡아 전방후원분에 묻으리라 하였다. 그러나 고람거사의 행력이 이미 몇십갑자에 이르러 가히 본좌라 일컫을 만하여 결국 이기지 못하였다. (백범이 민간인을 죽인 게 맞긴 맞는데 아마 야쿠자일 것이다-라는 결론이 낫다) 백범대첩을 맞아 고려인휘수토리(高麗人揮數土里)애 역개루인들이 몰려가 사료를 모두 사재기하니 하룻밤사이에 검색어 순위가 모두 바뀌었다. 역개루인들이 사료에 대한 숭앙이 무릇 이러하였다. 백범대첩은 결국 왜도손의 지모에 고람거사 이하 역개루 전체가 휘말려 들어가 왜도손의 위명만 높여준 꼴이 되었다. 이후 역개루의 분위기가 왜도손이 의도한 대로 흘러 왜파(倭派)가 크게 힘을 얻고 국빠(國派)는 비이성적 집단으로 폄하되었다. 왜도손의 지모가 무릇 이러하였다. 사관이 논한다. 평소 왜도손이 게시물에 자신의 병력을 다 풀어놓지 않고, 적장을 미리 예측된 답글로 유도한 연후에 감춰두었던 병력을 풀어 박살내어 논파하는 수를 잘 썼다. 왜도손이 철퇴반정때 송태조 조광윤을 지지한 것은 폐주를 왜빠로 모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유도함이 아닌가? 왜도손이 고람거사와 결탁한 모습을 연출한 것은 고람거사를 왜빠로 모는 자들에게 힘을 더하여 줌이 아닌가? 과연 그리하여 양주의 실각이 더욱 가속화된 측면이 없지 않다. 이 왜장의 지모는 전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큰 전국을 내다보고 역개루 조정을 황폐화 시켜나가는 크고 음험한 지략이 있음이라. 작금에 이르러 역개루가 망개루에 이르게 되는 일에 왜장 왜도손의 지모가 큰 몫을 하였다.

22300후반에 상인 로이(露異)가 보고하길 인조이재판(人調異財版)의 역판(歷版)이 드디어 침몰하여 사라졌다 하니 역개루 조야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 난민이 역개루에 유입됨은 큰 우환이 아닐 수 없다.

22600후반에 비서랑(秘書郞) 토루기(兎壘期)가 당대에 빈벌했던 왜노 토벌의 한 장면을 사초로 남겼다. ▶ 병술년 이월 말, ‘제 2차 왜장 와도손 쇼군전 ‘(第 2 次 倭將 瓦道孫 將軍戰)이 후, 2차 세계 대전 개루(2次 世界 大戰 開樓)의 왜구 김고촌(倭寇 金古忖) 등의 지질이(止叱以)들이 역개루(歷開樓)에 난입하니 역개루 는 어지러웠다. 역개루인(歷開樓人)들은 격렬한 대항 끝에, 역개루 알보 공(曆開樓 軋步 公)인 역사 공(曆事 公)의 지원으로 왜구 김고촌의 아이피(亞李皮) 3월 2일까지 차단 시키는데 성공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역개루에서 보로우(保魯宇) 하고 있던 ‘정사개루 군(政社開樓 軍)’의 ‘정의 애수도(正義 愛守島)’ 와 ‘평화장 김대철(平和將 金隊凸)’ 이 등장하여 역개루를 의 혼란을 더욱 더 증대 하고 있으니 슬픈 일이도다. 정의 애수도는 ‘위대한 박정희(Magnus Pak Jung He )'를 외치며 지질 거리고 있고, 평화장 김대철은 ’4년전 일도 역사다(4年 前 事件 之 曆事) 라고 하며 지질 거리고 있다. 평화장의 주장은 어느정도 일리는 있으나, 그건은 최근의 역사 이므로 정사개루에서 다루어야 함이 올바르다. ◀ 대저 왜노를 토벌하고 정사개루의 악습을 단속하는 일이 무릇 다 그러했다.

23000에 이르기까지 정사개루의 난민들이 준동하고 유동닉이 대세인지라 역개루에서 개념을 찾을 수 없게 된지 오래이다.

22900후반에 대홍로(大鴻擄) 가각(可角)이 역개루 오후라인(晤侯裸人) 정모(定募)라는 이름으로 역개루 세도가들의 회담을 주창하였다. 이후 정모운동이 오래 이어졌다. 대사농(大司農) 구구(具句)가 크게 반겼고 소왕야(小王倻) 강희대제(康熙大帝)가 열랍하였다. 그러나 원로 항거(抗去)가 세도가들간에 사사로운 정을 쌓으면 마땅히 의로써 행해야할 논파가 행해질 수 없을 것이다하니 섭정 고람거사(孤藍居士)가 옳게여겼다. 정사개루에서 정모 회담이후 제후들이 서로 사사로운 연으로 엮어 어리석음을 서로 눈감아주니 이윽고 개루가 파국에 이르렀음을 직시하라 하였다. 다른 제후들도 응하지 아니하였으니 역장 백유빈(魄油彬)은 개학의 변고로 인한 불가함을 말하였고 향장 마요내주(魔燎乃主)는 필경 칼부림이 날 것이라하여 경계하였다. 비서랑(秘書郞) 안대루손(安大淚遜)과 동직의 토루기(兎壘期)는 제후들이 행해야할 원로의 어려움을 들어 반대하였다.

22900후반에 천민 진실규명(眞實糾明)이 왜노의 찢어진 훈도시를 줍고 기뻐하여 이를 두루고 해안 마을들을 약탈하여 많이 낚았다.

23000전반에 대홍로(大鴻擄) 가각(可角)이 정모(定募)를 계속 추진하여 마침내 자신의 근본을 밝히고 아명과(兒名)과 전번(電番)까지 드러내었으니 온 역개루가 그 대담함에 크게 놀라 넘어졌다. 대홍로(大鴻擄) 가각(可角)이 오래 원수된 바 있는 섭정(攝政) 고람거사(孤藍居士)를 사뭇 정중한 말로 초청하였으나 고람거사가 싸늘하게 비웃으며 왈 공자께서 鄕原, 德之賊也(향원, 덕지적야)라 하였으니 가각은 덕의 적(德之賊)이라, 어찌 군자가 적에게 경을 베풀러 가리오 하였다. (여기서 향원은 세상의 인심을 두루 얻은 자로 그 마음이 인의에 있지 않고 세상에 영합함에 있으니 공자가 가리켜 덕의 적(德之賊)이라 하였다) 고람이 가각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치리하자 가각이 정이 상하여 자신을 윤후(尹鑴), 고람을 우암(權檣)에 비유하여 고람을 우암과 같은 예로 칭하여 고자(孤子)라 부르겠노라하며 농하였다. 두 본좌의 싸움이 크게 이어졌으니 양좌의 내공이 심후하여 무학자가 섣불리 낄 수 없는 경지였다. 사관은 논한다. 고람, 가각 양좌의 내공이 심후하였으나 그 성정이 각박하여 천하의 태평보다는 원수를 미워하는 일에 더 몰두하였다. 본좌라 하는 자들이 이처럼 서로의 상투를 물고 놓지 않으니 이후 역개루가 망개루로 향하는 전말을 뭇사람이 다 보아 알 것이다. 그리하여 양좌가 공히 낙향하여 벌오우(罰誤憂)의 근심을 당하게 되었으니 다 제 성정으로 그리된 것이다.

23100초반에 가각(可角)이 기어코 정모(定募)령을 발하여 종각(鐘閣)에 열후를 소집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원로의 불리함으로, 더러는 고람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오지 않으니 정모운동이 곧 소멸하였다. 이후 24000대까지 역개루가 조용하였으니 본좌들이 몸을 사려 낙향하고 서로 싸우던 군벌들도 힘이 쇠잔하여 창끝이 무뎌졌음이라. 종묘의 위패에 천천히 먼지가 쌓여가고 용상의 금박이 벗겨지니 역개루의 문물이 쇠퇴해가는 모양새가 무릇 그러하였다. 이때에 광록대부(光祿大夫) 옥위아육위(玉蔚亞育護), 중랑장(中郞將) 전륜성왕(電輪聖王), 응양군상호군군부판서(鷹揚軍上護軍軍簿判書), 대사농(大司農) 구구(具句), 기도위(騎都尉) 보람돌이(寶襤乭異) 구경(九卿) 후물후물(候沕厚勿)등 조정의 차좌급 중신들이 근근히 국사를 꾸려나갔다. 더하여 본좌 아마조온왕수달(亞魔朝瘟王水獺)이 가뭄에 콩나듯이 입조하여 체면치례하였다. 올두보이(兀頭保異) 누루하치(奴兒哈赤)등의 군국주의 난신이 불러일으킨 폐속이 역개루 강역의 삼할을 휩쓸었다. 암니옹니(癌泥瓮泥)등의 암살단이 수시로 출몰하였다. 왜장(倭將) 왜도손(倭盜孫)이 이끄는 왜노의 군세는 이미 역개루의 모든 해안을 차지하고 있었다. 왜노의 무리중 왜도손과 같이 큰 이름을 얻은 자는 없었다. 舊천국계단(天國 階段) 나주(螺主)는 왜노는 아니로되 항민으로서 왜노와 결탁하였으니 조정의 오랜 우환이 되었다. 오래된 환도의 괴수 독천문(獨天門)이 출몰하였으나 환도의 기세가 그리 크지 않았다.

24100후반에 왜노 김고촌이 자진하여 죽으니 천조에 실로 오랫만의 희소식이었다. 2만4천대에 총통 어쩌고 하는 무리들과 정사개루의 난민들로 인한 폐해가 환도의 그것에 못지않게 되었다. 이 시기에 환도와 왜노와 정사개루난민들이 서로 코를 물어뜯으며 싸우는 아비규환이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천병이 감히 도성밖으로 출병하지 못했다.

24700 중반에 역신(逆臣) 랄라라(剌裸裸)가 다시 세를 모아 봉기하였다. 랄라라가 왜노의 힘을 빌어 천조를 능멸하는 것이 항민 나주(裸主)의 그것과 같았다.

2만4천대 후반에 조정의 옛 훈신 로직(勞直)이 랄라라가 내건 역성의 기치를 흠모하여 반군에 어염을 댔다.

2만4천대 후반에 대시인사이두(大市人社異頭)의 여러개루를 떠도는 유세객 조선의검객(朝蘚意劍客)이 천조에 입조하였다.

24800초반에 항민 나주(裸主)가 오히려 왜파 오덕후(誤德侯)를 공격하였으니 이는 자신이 왜노와 결탁하였음에도 적에게는 왜파의 오명을 씌우려 하는 수작이라. 뭇백성이 음험한 자로 여겨 욕하였다.

24869에 대제학(大提學) 역갤러탐구자(歷開樓探究者)가 당금 역개루의 139인 인명록을 작성하니 후대에 길이 보배로운 사료가 됨이다.

////////////////////// ★개념본좌★ 孤藍居士 (고람거사) 꾸꾸 데라지 무지랭이 미스트 別武士 (별무사) 블레이드 아마존왕수달 조이 초보회원 해돌이 解明 (해명) /////////////// ☆고수 ☆ ^^^ 1 갸갹 게이볼그 기우 김모군 낄낄 다향 돈데기리 랄라라 로직 미트볼 민족백서 뷁하 사기꾼 사마시 산마로 선비 소인배 송태조조광윤 수레 惡黨 (악당) 안덕삼선생 / Anderson 오작서생 玉蔚亞育護 (옥울아육호) 우띠 鷹揚軍上護軍軍簿判書 (응양군상호군군부판서) 전륜성왕 전문가 제네럴 퀘엑 테무진 항거 햏력증진제 헉 헑 흐물흐물 Banti cherubinik hyhn217 Sinsigel skunkworks ////////////////
 
◆보통◆ ??? 가시나무 감계사관 관전자 김믿음 누루하치 뮤젤 바다사자 朴下史湯 (박하사탕) 발라 백유빈 보이조지 아리우스-나우시카 아에티우스 악소 안템 야스히로 오리엔탈리즘 올드보이 일단 장개석총통 장미유 주니네 지슈카 참모본부 쿠쿠 킵착 테리 토르끼 포데로사 학생 aetoon Atomic conde Leo ////////// ○하수○ ^^ 강희대제 고리 곽리첸푸 낙태 날뽕 남만괴인 다이빙스톤 르빠겐죠 무명씨 뭐좀안다 배긴스 살라딘 시세이도 신돈의 충고 젠장 중딩 춘천반달웅 풍류기파랑 헐;; 힙합 edgar6 FC롯데 Sioux ZX //////////////////////
 
♨찌질이 ♨ 개념은? 김대철 녀ㅛ호ㅑ 독천문 롬멜 물가상승 바람돌이 ㅅㅂㄱㄷ 암니옴니 암황제 제3제국총통히틀러 제갈량 카엑 특수문자 NAZ sd ///////////////////// ♬犬之子弟♬ 셜록 홈즈 아테나 와트슨 중화 청개 팬티팔이 소녀 핑크 aineas ////////////////////////////// 빠진 고정닉 있으면 립흘 달아줘. 그리고 등급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도 립흘 달아줘. 단, 실력있다고 고수나 본좌되는 거 아냐. 인간성 떨어지면 종합점수에서 깎여서 등급이 떨어지는 수가 있어. ps.'인간성' 의미가 오해의 여지가 있구나. 제 실력을 역겔러에게 도움되는 방향으로 쓰는 것을 인간성이라고 하자. /////////////////////////////

대저 역개루의 명망있는 이름들이 무릇 저러하였다. 명단이 반포되니 세도가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서로 쟁론하기를 내가 높다 저이가 높다 그이가 낮다 하니 무리가 한가지로 명예를 중시여기더라. 이 명단으로 인해 역개루인들이 공을 쌓아 위명을 높임을 중시하게 되었으니 2만대 중반의 짧은 역개루 르네상스는 오로지 이 명단의 공이라.

25000대에 이르기까지 역개루 조정의 중신들이 개념에 크게 정진하여 한페이지에 개념이 하나씩은 있었다. 그러나 25000대 이후 왜노와 정사개루 난민이 크게 창궐하였다.

25300 초반에 중신 토루기(兎淚期)가 왜노 아야나미(綾波)를 크게 쳐서 무찔렀다.

25300 중반에 정사개루 난민이 전에없이 날뛰니 한때 강역의 반을 점하였다. 정사개루 난민의 난동이 25500까지 오래갔다. 이 화를 없이하지 않으면 결단코 역개루가 망해 없어질 것이라는 충언이 잇따랐다.

25700중반에 근본을 알수 없는 재야사관 개이시시구라울(介異示示求喇鬱)이 역개루총정리시리주 인명록 두권을 써서 남겼으니, 당대의 보배로운 사료이다. 이처럼 2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역개루의 세도가들에 대한 사료가 많이 나오게 된 것은 역개루가 이미 흥기를 지나 그 내역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고자하는 쇠락기에 접어들었음을 뜻할 수 있겠다.

역개루총정리시리주(歷開樓摠程籬周)- 1권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history&page=4&sn1=&divpage=4&banner=&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4043

역개루총정리시리주(歷開樓摠程籬周)- 2권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history&page=3&sn1=&divpage=4&banner=&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4044

역개루총정리 명단은 그 대강이 대단히 소상하고 방대하여 한번에 가볍게 보지 못할 대업이라. 역개루사에 길이남을 보배이다. 저 두권의 사서에 대한 연구만으로도 역개루사 전반에 대한 심후한 내공을 득할 수 있을 것이다. 서관 고무인간(古舞人間)인이 예전에 저 명단의 분석에 대한 초를 최초로 잡았다 주장하였다. 명단에 대해 태후곤저자(太侯崑著者) 본좌대성(本座大聖) 윤민혁(尹民革)좌가 기술에 오류가 있다하였다. 이후 개이시시구라울(介異示示求喇鬱)의 정체에 대한 추론이 계속되었는데, 대체로 폐주 송태조 조광윤이라 하는 자가 많았다.

2만6천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난적들은 알바공의 삭제방략으로 없이되었고 장삼이사의 백성들이 소소한 업으로 역개루를 근근히 꾸려나갔다.

2만 5천후반에 왜노에 더하여 군국주의가 뼈에 박힌 존노람(尊奴攬)이 크게 날뛰니 향장 루운투수태투(淚雲鬪守太鬪)가 크게 쳐서 물리쳤다. 西曆4月12日에 국희누수(國喜漏手)라하는 언론이 역개루 중신들의 고견을 구하니 중신들이 화답하여 역개루의 명성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history&page=363&sn1=&divpage=8&banner=&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4409

2만6천대에 들어서 민족의혼(民族意魂)이라하는 환도가 크게 날뛰었다. 눈을 감고 귀를 감아 보고 듣는 바 없이 된 이 괴수에게는 도검이 불침하니 잡아죽일 수가 없었다.

26100전반에 대시인사이두 전역에 모습을 드러낸 미륵 김독탁(金獨卓)이 역개루에도 강림하여 체구문양(體求紊樣) 남방의 도를 강론하였다.

2만6천대에 역개루가 온통 왜노와 왜까의 싸움으로 뒤덮이니 역개루를 일본개루라 한탄하는 지사들이 많았다.

25400중반에 연재의 업을 쌓던 향장 역사만(歷史滿)과 향장 겁착(怯着)이라 하는 자의 싸움은 사소한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로되 마치 원수처럼 크게 싸웠으니 역개루의 논파연하는 풍조의 폐해가 컸다.

26400중반에 유생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채탱방(綵撑房)을 많이 개설하였다.

역개루가 2만6천대에 접어들 무렵- 西曆2006년 4月17日에 난신 랄라라(剌羅羅)가 새로운 땅을 개척하여 역개루불로구(歷開漏不老區)라하는 독립국을 창건하였다. 랄라라가 역개루 제위를 노린지 오래된 난신이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따로이 창업하였다. 랄라라가 역개루의 중신들을 자신의 조정으로 청하여 왈 역개루는 이미 왜노와 환도와 정사개루 난민의 준동으로 기둥이 기운지 오래인지라, 곧 무너져 없어질 것이다. 짐의 불로구에 입조한다면 토붕와해(土崩瓦解)의 화를 피함은 물론이거니와 더불어 권세를 누리기를 천년만년 할 것이다- 하였다. 랄라라가 역개루의 뿌리깊은 명문세족만을 골라 자신의 불로구에 들이니, 역개루에서 본좌 중신이라 하는 세도가들이 대거 넘어갔다. 그리하여 삽시간에 랄라라가 역개루에서 가장 강력한 제후가 되었으니 장차 랄라라가 도성에 입성하여 제위에 오를 것이다 하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옛 난신 랄라라가 당금에 이르러 제위를 넘보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참으로 역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http://historydc.blogspot.com/ 랄라라의 역개루불로구(歷開漏不老區) 창건이후 역개루의 개념부족이 가일층 심화되었다.

2만7천대에 역개루는 이미 망개루에 다름없었다. 본좌는 없으니 아무도 없었다. 왜노와 왜까의 싸움이 온 강역을 휩쓸었고 환도의 암살단은 적으로 지목한 자는 반드시 왜빠로 몰아 암살하였다. 이 암울한 시기에 저 머나먼 인조이재판(人趙異災版)에서 수행중이던 고람거사가 내입어(乃立漁) 총독부의 재판(災版) 총통을 대파하여 몇년간 지리하게 끌어오던 청산리 전쟁을 승리로 끝냈다는 승첩이 전해졌다. 내입어 총독부(乃立漁 總督府)는 역개루에 출몰하는 왜노처럼 변복한 가짜 왜인이 아닌 진짜 일본 국적의 왜인들임이라. 청산리 전쟁의 규모가 일찌기 볼 수 없던 장대한 것이었다. 몇년에 걸쳐 양측이 청산리에 수만의 병력을 투입하고 수십만의 리풀로 치뤄진 전쟁이다. 인조이재판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이투(社異鬪)들에서도 이 전쟁의 부분 전투들이 수행되었고, 역개루에도 전쟁의 여파가 미친 바가 컸다. 대체로 총독부가 우세하여 연합군이 도처에서 패하였고 역개루에서도 왜도손을 비롯한 왜노가 승기를 타고 청산리의 우세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西曆2006年 4月에 이르러 끝내 고람거사가 후생성 명부에서 적의 주력을 요격하니 왜적의 피가 청산리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강을 이루었다. 마침내 총독부가 백기를 들게되니 이 땅의 역사관련 사이투(社異鬪)들에서 모든 백성이 뛰쳐나와 만세를 불렀다. 역개루에서도 거국적인 환영의 뜻을 나타내었으나 고람거사의 정적이 많아 기치가 많이 훼손되었다.

27700초반에 도화서제조 춘천반달웅(春川半獺熊)이 역개루 세도가들의 초상을 새로이 그려 올리니 조야가 모두 기뻐하였다. 이에 강희대제(康熙大帝)가 실사판으로 각색한 초상을 뒤이어 올렸다.

22700후반에 도화서부제조 한하제 춘천토갱이(漢何帝 春川兎羹異)가 역사화를 그려 올리니 역개루 화단의 신예인지라. 춘천반달웅 화파와 더불어 역개루 화단의 양대기둥을 이루는 화인 괘액(罫厄)은 군물의 그림에 능하였다.

27700후반에 고람거사가 행방이 묘연하여 환도에게 암살당하였다하는 이도 있고 왜인들에게 납치당하였다하는 이도 있었다.

27900후반에 입치료(笠恥療)라 하는 왜노가 태평양에서 크게 날뛰니 천조에서 이대개루(二大開樓)에 명하여 병사를 내어 토벌하라하였다. 이대개루에서 아탱보로(亞撑保勞), 오루가(吳累家)등이 원정군을 이끌고와서 입치료를 마리아나 해구(魔璃亞螺 海口)에 수장하였다.

29000에 이르기까지 환도가 크게 날뛰었고, 왜노가 양민을 많이 낚았다. 2만대 후반에 주몽과 연개소문을 대세로 하여 방송사의 고증을 한탄하는 풍조가 있었다. 유생 방랑검객(放浪劍客)이 많이 한탄하였다. 2만대 후반은 대체로 역개루의 멸망이 가시화되어가는 시기로서 랄라라의 역개루불로구 분국이후 개념이 급속히 쇠퇴하였고 정사를 맡은 중신이 아무도 없어 사실상 율령이 와해되었다. 조정의 와해를 틈타 환도가 크게 세를 확장하였고 왜노가 전국을 주도하였다. 이에 맞서는 의군에 본좌는 없고 어리석은 백성들 뿐인지라. 적도를 토벌함에 있어서도 위엄을 갖추지 못하였다. 이 시기에 환도와 왜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역개루 강역을 초토화 시키는 모양새를 보건데, 필경 이 두 흉적이 비밀리에 어둠의 연합을 결성하여 공적인 역개루를 멸하자 하는 결의가 있었던 것이 아닌 지 의심될 지경이다.

2만대가 끝나고 3만대에 접어들면서 역개루 멸망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하니, 3만대부터는 현대사이다.

나광팔 집권기(2007년)[편집]

2007년 디시에서 전설이 된 책사풍후가 출몰하였다.

강희대제 집권기(2007년 ~ 2008년)[편집]

2008년 증산도 계통의 환빠가 등장하였다.

책사풍후 집권기(2008년 ~ 2009년)[편집]

2009년의 역사갤러리의 시작은 일빠들의 독점 독주로 인한 반발심에 여러 세력들이 봉기하며 일어났다 역사 갤러리는 일빠들에게 점령당하여 그 강력한 환빠들마저 두려움에 글을 배설하지 못하였고 오직 일빠라는 하나의 세력이 있어 주변 세력을 위협하고 비웃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빠들은 역사 갤러리 대륙이 아닌 다른 대륙도 침범하며 항공기, 기갑, 2차세계대전 그 외 다양한 갤러리까지 공격하며 찌질함의 극을 보였다. 그러나 일빠들의 조루인증에 서서히 일빠들은 힘이 사라졌고 해외원정나간 일빠들은 원정나간 갤러리에서 정착하며 찌질짓을 하였다. 그러나 2009년 일빠들의 창시자격인 나삼이 등장함으로써 다시 재통일. 떨어져나간 일빠들까지 다시 합세하며 국빠, 개념, 환빠, 중빠들을 모조리 다 쓸어버리고 일빠를 중심으로 역갤을 움직이려하였다.

그에 역갤의 피난민들은 역갤카페라는것을 창설하여 그곳에서 다시 부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앞에 말한대로 일빠들이 다른 갤러리까지 공격하여 찌질거렸음으로 각 갤러리마다 일빠들을 제거, 복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미녀들의수다(이도경)갤러리 (나삼도 여기 출신)도 예외는 아니였다. 원래 이곳을 서양녀사진이나 보면서 웃던 갤러리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국까글이 난무하였고 여기에서 정복왕이라는 자가 미수갤을 국까들로부터 벗어나게 하였고 역갤로 진출하였다.

정복왕의 등장 정복왕은 우선 역갤내의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일빠들에게 대항하였다. 이에 나삼과 그의 일빠들은 총 공세를 퍼부었지만 논리따위가 없는 일빠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게다가 일빠들의 수령급 나삼이 9급공무원드립에 휩싸이면서 나삼은 그냥 웃음거리로 변모하고 일빠들은 다시 여러 부족들로 나뉘어져 분열되었다.

히데요시의 등장 히데요시는 일빠들로부터 역갤을 구해낸 국빠세력중 한명이다. 이 자는 정복왕과 함께 역갤을 구원하였지만 정복왕은 만주원류고, 조선상고사등의 고농축 국빠로 변하고 있었기에 히데요시는 정복왕과 결별을 선언한다. 히데요시는 한때 도쿠가와 그리고 이에야스라는 추종자까지 생겼다. 도저히 그의 말빨앞에 일빠들은 상대가 되지않았기 때문이다.

환빠세력들의 재부흥 나광팔이 잠시 모습을 보이면서 환빠들은 흥분하기 시작하였으며 게다가 책사풍후의 등장이 겹치면서 환빠들은 폭주하였고 그 상황에서 마 광팔이 또 재등장하여 환빠들은 폭발하였다. 국빠세력중 몇명은 이미 환빠라 불리울정도로 타락하였고(정복왕,해피빈,콜라캔~등등) 일빠들도 없던 시기라서 환빠들은 일빠못지않게 찌질거리면서 똥을 배설하여 역갤은 더러운 냄새만 풍겨왔고 이 시기에 많은 개념닉들이 부흥이나 토탈워, 역갤카페로 피신하였다.

개마무사의 등장 개마무사의 시초는 아직 그 누구도 모르며 자신만 알고있다. 그는 전설적인 인물이며 현대까지도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있는 인물이다.(병신) 그는 환빠들을 교란하는 게릴라형태로 출현하였다. 그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고 환빠들 대부분이 질려서 도주하였고 남아있는놈을 꼽자면 책풍,마광팔 뿐이였다. 지금의 개마무사와는 달리 그때의 개마무사는 국까도 아니였고 정신분열자도 아니였다.. 환빠들의 견제하는 중요세력중 하나로써 영향력을 갖고 중요한 인물이였기에...........................

쮸쮸쮸의 등장 환빠들이 서서히 몰락하고 개마무사가 역갤왕이 되어가고 있고, 국빠들도 점점 분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력한 쮸쮸쮸가 국까 수령으로 등극한다. 쮸쮸쮸는 나삼과 같은 몰락한 일빠들을 구제하였고 중빠들을 엄청난 숫자로 역갤로 이주시켰으며(삼국지갤로추정) 개마무사는 딕일이라는 유동닉을 창조, 국까로 변모하였고 그 중심에서 쮸쮸쮸 세력은 남아있는 국빠들을 목졸라 죽였다. 환빠들은 마 광팔밖에 보이지 아니하였고 책사풍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이때부터 정복왕과 마 광팔이 친해짐)

안토니오 반만데라 (메탈포스)의 재등장 옛날부터 유명한새끼가 안토니오 반만데라라는 아이디로 역갤에 재출현하였다. 메탈포스는 서빠로 변해있었고 딕일이(개마무사)와 친분관계를 맺고 친하게 지냈다. 그리고 가끔 국까로도 변모하였기에 정복왕, 히데요시, 마 광팔은 매우 불편해 하였고 그에 일어난 전쟁이 정복왕-안토니오 조선vs로마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메탈포스는 말도 안되는 로마 방진 무적 방패 화포도 막는 무적방패같은 녹음기&병신드립에 병신킹으로 선정되었고 전쟁에서 이긴 정복왕은 기고만장해져서 딕일이와 전쟁 도정복왕의 승리로 또 끝났지만 무의미해졌고 국까들의 주요 표적이 되어버렸다.

정복왕 고소드립 한때 역갤의 균형을 다시 맞춘 희대의 병신이였지만 환빠들과 어울려서 같은 국빠들에게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마 광팔과만 친해져 고립되었었고 외세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돼지짱이라는 인물이 나타났다. 돼지짱은 정복왕이 당나라 영토에 토번을 넣은것으로 전쟁을 선포, 가볍게 정복왕을 쓰러트린다. 이 때부터 정복왕은 자신의 상황을 알아채고 발악하지만 결국 고소드립에 휘말리면서 정복왕 천하도 끝나고 전사한다.

국까들의 분열 정복왕이 사라지고 마광팔은 그냥 병신으로 남아있게 되었고 오직 히데요시와 이에야스, 도쿠가와만이 국빠들을 통솔하며 겨우 유지해나갔으나 쮸쮸쮸를 토대로 뭉친 국까들은 이에야스를 먼저 전사시키고 도쿠가와를 전사시켜 히데요시의 추종자를 모조리 몰살하였고 결국 혼자 남아있던 히데요시도 마침내 조루인증 gg를 선언하고 국빠들은 해체된다. 그에 숙적인 국빠들을 없애버린 국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찾기위해 전쟁을 벌였고 다시 숫적으로 우세한(중빠가 의외로 조루가 심하다) 일빠들이 정권을 잡아 다시 역갤을 무통제 병신상태로 만들었다.

책사풍후의 재등장 7월초기 환빠한명이 붙잡혀 강간당하였다.. 일빠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책사풍후가 등장하였다. 그는 능히 혼자서 5명~10은 상대할 수 있는 전설적 병신이였다. 그는 초기에 살짝 등장하였으나 활동이 미비하여 각종 뉴비들은 그가 병신인지 알고 무시하였으나 이제는 아니였다. 그는 순식간에 내부적으로 썩어있던 일빠들을 개박살 내버렸다. 이에 올드보이, 불만족은 크게 분노하여 개마무사의 게릴라 활동을 도왔다. 카롤루스와 불만족이 언제부터 사이가 나빠진지는 모르지만 대게 이때쯤부터일것이다/ 마 광팔도 다시 흥하여 7월초기부터 8월초기까지를 능히 환빠전성기라고 표현하기에 아깝지가 않다.

개마무사 정신분열

이때부터 개마무사는 정식적으로 정신분열하여 똥싸풍큐, 개마무사, 딕일이로 환빠세력을 견제한다. 하지만 구심점이 없던 국까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게릴라로만 활동하였기 때문이다.(책풍에의해 썩어있던 일빠 수뇌부일당들이 붕괴함) 올드보이는 계속 정사갤러를 유입하였다.

2009년은 역갤의 최대 혼란기라 할 수 있는 시기이다. 요크달라르나는 계속적으로 일까짓을 하였다. 나삼, 쮸쮸쮸, 닝닝기리같은 일빠들은 노하여 점점 병신짓이 극대화 되었다... 티투스나폴로, 요크달라르나, 히데요시밖에 정상인이 없었다.............. 중빠들도 이때 계속 유입된다. 이때를 주춧돌 삼아 후에 황룡이나 은빛같은 중빠들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허나 이때까지만해도 중빠들은 대륙의짱개라는자에게 모조리 격파당했다. 다시말하지만 이때 만큼 균형이 그나마 환빠들 빼면 그나마 균형이 맞던 그런 시대였기에 많은 풍운아가 있었다.

황개리 그는 미수갤러 출신으로 몽골빠 고시원생이다. 이 자로 하여금 몽골-한국 연합론을 주요 떡밥으로 역갤에 약 20~40페이지가량 접수된다... 오스쿠로라는 자도 있었는데 황개리랑은 무슨 사이로 원한관계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참 재밌게 놀았었다.

불만족 그는 오래전부터 태고적 시절부터 있었던 병신중 하나이다. 8월 중반부터 이 자가 임나일본부다 뭐다하며 지럴거리는데 후에 중요한 떡밥이되어 11월달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의 출신이 아직 불분명한데 아마 불만족, 카롤루스등 병신들을 유입한건 아마 올드보이가 아닐듯 싶다.

Ruri의 등장 그는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역갤을 정화시키는데 일조한다. 8월초반기에 등장하여 책사풍후를 견제한다. 아마 제일 중립적인, 빠경향이 없는자를 뽑자면 당연 루리일듯싶다.

8월중반기 마광팔은 질렸는지 보이지도 않고 책사풍후와 그의 추종자들이 역갤을 거의 독점시 한다.... 이에 개마무사는 완전 돌아 미쳐버렸는지 정신분열의 극을 보여주기위한 여명기로 접어들었고 한때 역갤을 정복했었다는 일빠들도 다시 움직임을 보였다. 으허으허허, 딕일이, 닝닝기리, 쮸쮸쮸?, 나삼등이 중요인물.. 그리고 이때 정복왕이 다시 등장한다. 비중은 전과 비하면 눈물이 날 정도였지만 국빠들이 다시 뭉치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근데 아예 재야사학자가 되어서 돌아왔기에 정복왕은 병신취급받았다. 그러나 활동도 곧 뜸했고.. 히데요시는 다시 분발하여 국빠의 지도자격으로 취급받는다.

쮸쮸쮸?와 히데요시의 대결 쮸쮸쮸?는 일빠들의 오랜 동반자였고 히데요시는 정복왕과 같이 국빠들을 재 창설한 영웅이다. 그 둘의 싸움은 치열하였고 한편으로는 조용하였다. 하지만 그 둘의 싸움의 조회수를 보면 역갤의 모든 빠들이 그 둘의 싸움을 지켜 봤을것이다.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싸우나 했는데 역시나 무논리적 우기기로 유명한 일빠 쮸쮸쮸?는 유치하게 지랄거리면서 둘다 뻘쭘해져서 해산.

주코프의 등장 8월 끝나갈쯤에 등장하였음. 주코프는 훗날 그나마 개념인으로 그러나 한편으로 초기 정복왕처럼 허세쩔어 여럿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그런 인물로 평가되는 인물. 암튼.. 책사풍후의 기나긴 횡포속에 봉기하여 이름을 떨쳤다. 이때까지는 한글명.

딕일이 그는 개마무사의 세컨이다. 그가 하는말은 대게 인종과 관련된 병신글로써 찌질함의 극을 보이는 자기 잉여인생한탄글이다. 본래 딕일이가 개마무사일꺼라는 생각은 어느누구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개마무사의 실수로 딕일이 아이피로 개마무사글을 적어버리는 그런 사태가 발생, 그 후부터 모든 찌질이들이 개마무사 세컨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암튼 딕일이의 인종관련글로인해 한국인은 근본부터가 썩은 저주받은 민족이라면서 국까들이 개지랄을 하기 시작. 쮸쮸쮸는 언제까지 지랄거릴지는 모르지만..아직까지 지랄.......

9월

정복왕은 조선상고사말을 퍼트렸지만 결국 어느 괴인&불만족에게 털려서 더욱 비참해졌고 yui라는 사람 혼자서 균형을 이루려 했으나 실패하고 일빠들이 다시 부흥하였다. 딕일이의 인종글을 인용하여 히틀러처럼 사이타마는 한국인은 범죄민족 이러면서 나삼과 짜고 지랄하기 시작함. 마 광팔은 뒤늦게 정복왕글을 보고 조선상고사 내용을 퍼트리지만 이미 늦어서 혼자서 드립치다 사라짐. Ruri의 글에 나삼은 발정난것 처럼 지랄하기 시작했고 공식적으로 미친놈 취급받음. 카롤루스는 정사갤찌질이 답게 이상한 지역감정 심화글이나 퍼트림. 조선의자랑이라는 인물이 등장(개마무사로 추정) 10월 국까대반란의 기초를 닦는다.

10월 발키리의 등장. 이자도 옛날부터 태고적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근성가이다. 아무튼 10월 초반기에 임나일본부(일본이 가야지방 점령)을 두고 일빠들이 대 반란을 하는데 의외로 정복왕이 다 정벌. 삿포로소녀, 오사카소녀, 도쿄소녀 등 개마무사 세컨으로 보이는 아이디가 눈에 띄며 일빠들이 지랄하는 일빠들이 제대로 목에 힘주고하는.. 그런 시대의 마지막이라 볼수있는 그런 시기.

구은재의 등장 말도 안되는 조선빠며 히데요시, 정복왕의 공백을 채워주는 국빠다.

모신나강의 등장 러시아의 본좌라고 주장하지만 뭐..그런거 같기도 하고 허세인거 같기도 하고 암튼 역갤내 몇없는 지식인이자 개념인이다. 그러나 일빠들과 국빠들의 대립이 심화되는 10월 후반기에 각종 러시아관련글을 올리지만 묻혀버리는..암튼 비운의 주인공.

영웅호걸의 등장 계속적으로 역갤러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정신차리게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

숭례문이 불타는 사건 역시나 역갤내에서 숭례문이 불타자 일빠와 국까들이 좋아라한다-> 조선인의 문화재관리 비판-> 결국 무논리로 이상한내용까지 잡아내며 까대기로 일빠의 무개념을 제대로 보여주었으며 국빠나 정상인들은...... 암튼 뻘쭘하던 그런 사건.

그림자의 등장 새로운 국빠인력으로써의 등장이며 뭔가 구은재와 비슷한 느낌이나는 근성가이로 국빠들이 이길때 그 싸움에 출현 결정타를 날린다.

은빛, 황룡의 등장 새로운 중빠의 등장이다. 은빛은 그나마 논리적으로 한국을 까대며 중국을 높이 평가했지만 황룡은 유치함의 극을 달리는 병신이며 진짜 화교로 추정하는자도 있다.

11월 일빠들은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2~3일정도를 역갤 페이지 4장정도를 잠식하는 그런 근성을 보여주고 있고, 정복왕은 혼자서 만월대 복원했음 좋겠다.. 라면서 뭔가 환빠. 국빠를 벗어난 느낌이 보인다. 히데요시는 부재중. 그림자, 구은재같은 새로운 국빠들이 주도권을 잡으며 일빠들이 한번 지랄하면 국빠들이 금세 달려가 패버린다.

신애의 등장 11월, 12월 병신톱을 달리는 잉여킹, 병신킹, 장애킹, 찌질킹, 빵셔틀킹, 모든 부정적인 킹들을 휩쓸은 병신왕이다.

12월 히데요시가 가끔 보임. 일빠들은 급버로우. 일빠들은 더 이상 세력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됨. 진보주의자(나즈)는 발광하기 시작. 미쳐버린게 분명. 웃긴건 진보주의자에게 세뇌당한 몇명이 가끔 보이는데 아마도 나즈의 세컨, 아니면 정신병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복왕은 중세시대, 현대시대까지의 아시아 내용을 담은 시리즈물과 각종 만화물로 귀염둥이가 됨. 불만족은 가끔보면 정상인, 가끔보면 정신병자 이렇게 늑대인간으로 변하듯이 주기적으로 정신질환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알수없는 미지의 인물이며, 카롤루스는 4흉이다 어쩌다 하면서 정사갤러짓거리함. 개마무사, 삼족오가난다, 윤중로등 병신들이 득세하기 시작함. 갈갈갈 거리면서 윤중로는 까악까악갈! 이러고 논다. 병신들임.

그러나 기나긴 전쟁과 불화속에 역갤은 이미 奀망하기 시작했고 2010년을 시작으로 역갤은 코갤. 막갤화가 될 것 같다. 더 이상 풍운아는 보이지 않는다. 딥스같은 야한사진이나 올리는 그런 류들만 모이고 있다.

1월 딥스는 야한 사진을 올리면서 섹스얘기만 한다. 루리는 빡친다. 나삼과 같은 잉여들은 루리에게 구애를 한다. 정모에서는 그가 여자라고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야기이다.

2월 황룡의 재등장. 황룡은 앞에 말했던 은빛같은 중빠였는데 이새끼는 존나 싸이코가 다됐다. 왜냐면 동프갤에서 현피뜨자면서 장소에 안나와서 놀림쳐받고 일애갤 오덕새끼가 역갤로 피신왔다시피 했기때문이다. redpanda의 등장. 이자도 중빠이다. 중빠이긴한데 화교로 의심될 정도로 개념이 없고 지식이 전무하며 그냥 다른 일빠들처럼 퍼날라오기 밖에 못하는 자.

친목의 시작- 책사풍후가 스타유즈맵을 만들었다. 스타유즈맵에 아골타, 모신나강, 황룡, 이상한 애들이 함께 모여서 알콩달콩하게 스타하며 헠헠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골타, dddzz, 정복왕, 모신나강, 딕일이 이렇게 4명이서 라이즈라는 것을 한다. 친목으로 역갤은 헠헠거리기 시작했고 환빠들은 관심을 빼앗기고 일빠들은 관심을 받지 못하자 날뛴다.

쥬코프 관광사건 쥬코프가 한자를 틀려서 일빠들의 표적감이 되었다. 그는 삐져서 안 오고 있다.

딕일이 사칭사건 딕일이가 사칭이였다는것이 밝혀졌다. 원래 처음사용자는 몽골빠라고 불리우며 아마도 황개리같은놈일 것이다. 딕일이는 사칭범으로 개 놀림감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역 프 라는 아디를 만들어서 찌질함을 표출하고 있다.

신의명가의 등장 특유의 웃음소리로 조롱하고 역갤을 즐긴다.

구라의 등장 특유의 웃음소리로 조롱하고 역갤을 즐긴다.

개마무사는 공중분해 됐는지 딕일이, 이상한 아이디밖에 안보인다. 아마도 금지 사항입니다보다.

오코도다의 등장. 나삼을 대신하는 병맛 컨셉의 일빠다. 이 자도 그냥 퍼날라오며 국까짓한다.

2011년~2012년 사이에 역갤 서버가 다운되면서 정사갤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일빠, 국까를 유입시키고 야갤에 역갤 관련글이 오른다.

일본해 집권기(2014년 ~ 현재)[편집]

2015년 9월 3일 헬조선 갤러리가 생기자 주식 갤러리와 함께 식민지화를 했다.

주석[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