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괴책:월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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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항목이 겁나게 긴 월남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초기 월남[편집]

약 50만년 전부터 월남의 북쪽에는 월족 또는 비엣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월남의 북쪽의 주도권을 잡게 될 종족이다. 처음에는 딱히 특징 없이 살아가던 월족들은 듕귁의 광저우에서 월남 홍강 하류의 삼각지대를 떠돌아 다니다가, 삼각지대를 만나 정착하게 되었다. 49만 6천년이 흐른 뒤, 사오응으어이(Sao người?)가 와서 월족의 땅을 혼란에 빠뜨렸다. 듕귁 신화에 등장하는 염제 신농씨의 삼대 후손인 데 민(帝明)이 이곳이 아직 군대조차 없어서 이런 꼴을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듕귁에서 데려온 군대의 우세한 힘으로 월남?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는 아내에게서 아들 데 응이(帝宜)를 얻은 다음, 남쪽을 돌아 댕기다가 부 띠엔(婺僊)이라는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룩뚝(祿續)이란 아들을 낳고는 그를 낀 즈엉 브엉(涇陽王)이라 하고 돌아다닌 땅의 북쪽을 데 응이에게 주고, 남쪽을 낀 즈엉 브엉에게 주었다. 하지만 둘 다 야심이 많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죽자 전쟁에 돌입, 근 3년간 승패를 반복하여 주위에 민폐를 끼쳤다. 이를 지켜보던 훙 브엉(雄王)이란 사람이 반 랑(文郞)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사람을 빼가더니, 데 응이와 낀 즈엉 브엉을 모두 암살함으로서 혼란의 시대는 종결되고, 모처럼 한 나라가 된 월남은 놀러왔던 산의 요정을 붙잡아 자기 수호신으로 만들고 나서 평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툭판(蜀泮)이 훙 뜨엔 브엉, 즉 당시의 훙 브엉의 딸에게 결혼신청을 했는데 거절당했고, 툭판이 듕귁의 군대를 이끌고 왔으므로 이 나라는 멸망했다.

툭판 왕조(蜀泮王朝)[편집]

툭판 왕조는 툭판이 연 왕조이다. 툭판의 조상은 촉 땅에 살고 있는 듕귁인이었다. 간혹 촉(蜀)이란 성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촉 사람이 아니며, 먼 촉 땅에서?왔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 사실이 아닌것으로 공인되어 있다. 툭판은 촉 땅에 살면서 여러 가지 듕귁의 일을 들으면서 자신의 야망을 키워 나갔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산속에서 수행을 하다가 만난 황금 거북이에게서 군대의 힘이 위대하다는 말과 함께 쇠뇌를 전하여 주자 이에 감명을 받고 열심히 군대를 키우다가 반 랑으로 쳐들어갔고, 당시 훙 브엉은 전혀 대항을 하지 못하고 도망침으로서 반 랑은 멸망하게 되었으며, 덤으로 훙 브엉의 딸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안 즈엉 브엉(安陽王)이란 자리에 올랐다. 비록 듕귁 군대의 힘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지만 앞으로 월남에서 살아나가야 하기에 툭판은 듕귁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나라를 유지했고, 광서(廣西)에 살고있던 서구(西甌)란 종족들이 듕귁의 진시황제에게 쫓겨오면서 그들을 거둬들여 나라는 더욱 강성해지게 된다 한편 진니라가 너무 거대한 탓에 툭판은 남쪽의 꼬 로아(古螺)란 달팽이 성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진나라와 긴장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하지만 당분간 평화가 유지되자 점차 국방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으며, 쇠뇌도 위협적이라 하여 구석에 치워놓으면서 나라에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 임효(任囂)의 졸개였던 찌에우 다(趙陀)가 그 틈을 타 어우 락으로 쳐들어갔으므로, 툭판 왕조는 멸망하게 되었다.

남월(南越)[편집]

하지만 임효(任囂)란 듕귁인은 월남 땅을 탐하여 정복하길 꾀하였다. 하지만 병이 들어 죽어서 자기 졸개인 찌에우 다(趙陀)가 자신의 일을 이뤄주길 바랐고, 찌에우 다는 듕귁인들과 몇몇 월남 사람들을 규합해서 군대를 만든 다음에 그 군대를 가지고 툭판으로 처들어갔다. 당시 툭판 왕조의 안 즈엉 브엉은 전술한 바와 같이 군대를 제대로 키우지 않았으므로 대항할 수가 없었다. 결국 툭판은 멸망하고, 찌에우 다는 남월을 세웠다. 찌에우 다를 밀어준 듕귁의 나라는 그를 자신의 제후로 책봉했다. 찌에우 다는 분개했지만 너무 백성이 없는지라 알겠다고 했지만 나라 안에서는 나는 황제다!라고 주장하며 살았고, 한나라는 나라를 세운지 얼마되지 않아서 일단 냅뒀다. 하지만 그의 아들 반브엉(文王)과 아인떼(嬰齊)가 너무 바보였기 때문에 한나라에 의존했고, 한나라는 옳다구나 하고 남비엣 내에 친한파를 늘려나갔다. 게다가 이들 왕은 군대를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듕귁의 문명만 받아들였기에 군대의 힘은 나날이 약해져갔다. 이것을 본 승상 르 쟈(呂嘉)가 빡쳐서 왕의 이복형이자 사위인 끼엔 득(建德)을 투엇 즈엉 브엉(術陽王)에다가 올려놓으며 한나라 이 개새끼들아!를 외쳤다. 한무제는 훗! 하고 비웃으며 남월의 자기 백성이 위태하다는 구실을 붙여 노박덕(路博德)과 양복(楊僕)을 시켜 남월의 수도로 쳐들어가 남월을 멸망시키고 나서 7군을 설치하고 월남을 직접통치하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이 남월의 앞뒤 철자만 바꾼 월남이 현재 국명의 유래라 카더라.

듕귁의 1차 정복/2차 정복(한나라~ 남조 남송)[편집]

한나라는 기존 7개 군에다가 하이난 섬이란 곳에 2개의 군을 만들어 기존 7군에 2군을 합쳐 교지?를 만들었다. 한나라는 자국의 물품을 월남에 뿌렸고, 월남 사람들은 좋다구나 하고 받아들여버린 까닭에 독립하지 못하고 예속되어 버렸다. 한나라는 왕망에게 멸망하고, 왕망이 신나라를 새우며 옛 주나라로 돌아가자는 개혁을 실시하자, 이에 질린 사람들이 월남에 들어와서 듕귁의 문화가 전파되기도 했다. 하지만 듕귁인은 월남 문화를 보고 이런 야만인 같으니라고! 라고 외치며 자신의 문화를 받아들일것을 강요했다. 그래도 월남 사람들이 우릴 이대로 살게 해달라!고 외쳤지만 듕귁사람들은 자기네의 우월한 문화를 받아들이길 강요하며 돈을 너무 뜯어대자 봉기가 일어나게 되었다.

쯩씨 자매의 봉기[편집]

월남 어느 동네에 쯩짝(徵側)과 쯩니(徵貳)란 자매가 있었는데, 태수 소정(蘇定)이 쯩짝의 애인을 죽이고 쯩짝을 차지하려 들자 쯩짝과 쯩니가 다른 월남 사람과 힘을 합쳐 반란을 일으켰지만, 얼마 못가 한나라에서 마원(馬援)을 보냈다. 마원은 인해전술로 월남 사람을 깔아뭉개고 쯩짝과 쯩니를 보더니 너무 예뻤지만 반역자이므로 눈물을 흘리며 죽였다. 결국 마원은 열병에 걸려서 월남에서 죽어버렸다. 그 이후에도 듕귁은 월남 사람들을 수탈하기도 하다가 잘해주기도 하다가 자기가 원하는대로 월남을 다스려 나갔다. 월남사람은 대항하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듕귁 물건이 좋기도 해서 줏대가 생기지 않은대다, 무엇보다도 군대를 만들 수 없었으므로 듕귁인의 손아귀에 놀아날 수밖에 업었다.

사섭[편집]

이사람은 삼국지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으로, 오나라와 협력해서 교주를 다스렸다. 월남 사람을 다독이면서 듕귁과 월남의 화평을 도모하여 브엉(王)이란 칭호를 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사섭을 참고

전 리 왕조(李王朝), 찌에우 비엣 브엉(趙越王)[편집]

점차 혼란해져가는 듕귁의 지배는, 리본(李賁)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리본은 반란을 일으켜서 띤 티에우(幷詔)란 현명한 거지를 줍고 군사력을 지닌 찌에우 뚝(趙肅)이란 사람과 힘을 합쳐 군대를 기른 다음 듕귁인을 쫓아냈고, 저번에 워낙 듕귁에게 당했기 때문에 생겨난 민족의식을 꽃피우게 된다. 하지만 결국 끈질긴 듕귁인이 머릿수로 밀어붙였으므로 리본은 547년에 목이 잘려버렸고, 그의 형 리 티엔 바오(李天寶)는 라오족이 사는 곳으로 튀었다. 한편 그의 부장 찌에우 뚝의 아들, 찌에우 꽝 푹(趙光復)이 끝끝내 듕귁인들을 쫓아내는데 성공했으며, 찌에우 비엣 브엉(趙越王)을 자처했다. 하지만 리 티엔 바오의 먼 친척인 리 펏 뜨(李佛子)가 돌아와서 왕자리를 달라고 해 싸움이 일어나, 결국 리 펏 뜨가 승리를 거뒀으나, 듕귁인들은 수나라로 뭉쳐지더니 무자비하게 쳐들어와서 리 펏 뜨를 잡아가두고 나라를 멸망시켰다. 하지만 이로 인해 월남 사람들은 민족성이란 것과 군대의 중요성또한 조금 깨닫게 되었다.

참파 (옛 럼업(林邑))[편집]

참을 숭상하는 귀여운 참족이 건설한 나라로 월남의 남침을 버텼지만 월남의 인해전술에 밀려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월남사람은 자신들에게 저항해서 한나라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를 가지고 이사람들을 탄압해서 현재 이들 종족은 별로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가엽고 딱하도다! 하지만 이들의 후손 중 일부는 왜땅으로 들어가 자손수를 불렸고, 도이모이(刷新) 정책 이후에 대거 월남으로 귀환해서 월남의 소중한 인적 자원이 되었다카더라.

듕귁의 3차 정복(수,당)[편집]

나라는 고구려를 치는 헛방망이질로 인해 멸망했고, 듕귁은 난리를 겪다가 나라로 하나가 되었다. 당나라는 안남도호부라는 것을 두어 월남인들을 다스렸지만, 이미 민족의식이 생긴 월남인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듕귁인들은 값진 물건을 끊임없이 빼앗아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무자비하게 월남인들을 진압하면서도 유화 정책을 펼쳤으므로, 상위 계층은 듕귁의 문화를 향유했으며 하위 계층만 지지리 못살게 되었다.

자치 시대[편집]

당나라가 멸망할 즈음, 쿡(曲)씨가 듕귁인들에게 절도사란 자리를 인정받으며 월남을 다스렸지만, 군대의 소중함을 몰랐기 때문에 남쪽 듕귁인의 나라 중 하나였던 남한에서 땅을 넓히려고 군대를 데려왔으므로 쿡씨는 멸망해버렸다. 하지만 쿡씨의 부하였던 즈엉 딘 응에(楊廷藝)가 반란을 일으켜 자칭 절도사라 했지만, 친듕귁파인 끼에우 꽁 띠엔(矯公羨)에게 죽었고, 끼에우 꽁 띠엔은 이를 미워한 응오 꾸옌(吳權)이 모든 월남사람들을 이끌고 끼에우 꽁 띠엔을 공략했으므로 끼에우 꽁 띠엔은 자신을 도우러 왔던 남한의 군사들과 함께 물에 빠져서 죽었다. 이로소 월남의 민족성이 완성되었고 그 이후 듕귁의 지배를 받는 일은 다시는 없었다.

응오 왕조(吳朝)[편집]

응오 왕조는 군대의 소중함을 깨우쳐 건국 이후 지방에 12명의 사군을 보내어 군대를 양성하게 했다. 30년의 시간이 흐르자 월남의 군대가 막강해졌다고 판단한 응오 왕조에서는 참족의 땅으로 쳐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중요한 군사권을 쥔 12명의 사군이 야심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반역하여 응오 왕조는 멸망해버렸다.

딘 왕조(丁朝)[편집]

12명의 사군중 딘보린(丁部領)이란 사람이 일어나 나머지11사군을 다 죽여서 통일을 했지만, 장자 대신 막내아들을 왕위에 올리려 하자, 장자가 막내를 죽였고, 막내의 친구였던 도틱(杜釋)이 이들을 또 죽였다. 마지막에 살아남은 딘또안(丁璿)이 왕이 되었지만 너무 나이가 어린 탓에 당시 대장군이었던 레호안(黎桓)이 섭정을 하다가 왕의 자리가 탐나서 딘또안이 폐인이란 이유로 쫓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

전 레 왕조(黎朝)[편집]

레호안은 월남의 내분을 틈타 쳐들어온 나라의 침입을 무사히 막아내었으나 첫째는 죽고 셋째 레롱비엣(黎龍鉞)이 왕위에 올랐으나 다섯째 레롱딘(黎龍鋌)한테 죽었으며 레롱딘은 술을 처마시고 아우들을 너무 때려서 아우들이 난을 일으켜서 나라꼴이 말이 아니었다. 1009년에 북부 월남을 지배하고 있던 전 레 왕조(前黎朝)의 장군 리 꽁 우언(李公蘊)이 다 죽이고 나서 리 왕조를 세웠다.

리 왕조(李朝)[편집]

200년간이란 장기 집권을 했지만 7대 고종은 돈을 너무 많이 썼고, 8대 혜종은 바보짓을 해서, 군대를 거느리던 쩐투도(陳守度)는 그 꼴을 우습게 보고 혜종의 딸에게 황제를 준 다음, 자기 조카랑 결혼을 시켰다가 혜종을 죽이고 리 왕조를 멸망시켰다. 대고려제국으로 도망쳤던 리 왕조의 남자 한명이 가계를 이어갔으며, 현재 대한게임국에서 살고 있다.

쩐 왕조(陳朝)[편집]

몽골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나중엔 무신들을 천대했으므로 무신들이 반항을 해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강한 군대를 가진 호 꾸이 리(胡季犛)가 반항한 인간들을 다 죽이고 호 왕조를 열었다.


호 왕조(胡朝)[편집]

1400년에 건설되었지만 몽골을 막아낸 위대한 쩐 왕조를 멸망시켰다 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멸망해 버렸다. 당시 나라는 대조선제국의 압박으로 밑으로 내려오지 못했으므로, 듕귁 군사는 쳐들어오지 못했다.

후 쩐 왕조(陳朝)[편집]

호 왕조가 멸망하자 쩐 왕조에서 다시 왕권을 되찾아갔지만, 레 러이(黎利)의 꾐에 빠져 후손을 만들 수가 없어서 멸망해 버렸다.

후 레 왕조(黎朝)[편집]

레 러이는 왕에 오르자 대조선제국의 제도를 참작해서 토지 제도를 바꾸고 국자감이란 대학교를 다시 부활시키는 등 좋은 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군인 대접을 잘 해주기로 한 것으로 이로 인하여 나라가 안정될 수 있었다. 하지만 1527년 점잔을 빼던 막 당 중(莫登庸)이 갑자기 군사권을 뺏고나서 황제를 죽이고 막 왕조를 열었다. 이런 이율배반적 태도에 분노한 응우옌 낌(阮淦)은 레닌(黎寧)을 모시고 군대를 모아 레 왕조를 지키고자 결의했지만 막씨들은 응우옌 낌을 암살하고 레 왕조를 몰아붙이고자 폭풍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응우옌 낌의 사위인 찐 끼엠(鄭檢)이 자칭 쭈어(主)라 하며 군사권을 잡자 화가 난 응우옌 낌의 둘째 아들 응우옌 호앙(阮潢)은 남쪽으로 토벌을 떠나 군사를 기르러 갔다. 폭풍 공세를 펼치던 막씨들은 계속 밀고 내려왔지만 때마침 전염병에 걸려서 다 북쪽으로 도망쳤다가 멸망해버렸고, 대조선제국의 보호를 받기도 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못하는 허수아비가 되어버렸다. 막씨들이 꺼지자 응우옌씨는 찐씨가 제멋대로 군사권을 가져갔다고 해서 자기네도 쭈어라 칭하더니, 군사를 양성했다. 월남은 남북으로 갈라져서 싸우는 형상이 되었으며, 레 왕조는 힘이 없어서 지켜보기만 했다.

떠이썬(西山) 운동(왕조)[편집]

찐씨와 응우옌은 결국 두쪽 다 정치를 잘못해서 파탄이 났다가, 군대가 병진이되어 대조선제국에게 먹혀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다가 떠이썬 운동이 일어나 두 정권과 레 왕조를 다 없애버렸지만, 정권을 잡자 내분을 좀 겪다가 떠이썬 왕조로 변신해서 골육상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결국 떠이썬 왕조는 응우옌씨의 응우옌 푹 아인(阮福映)이 불났어인을 초빙해서 우수한 군대를 양성하여 이끌고 옴으로써 멸망하게 되었다.

응우옌(阮) 왕조[편집]

염원하던 왕권을 차지했지만, 애초에 불났어에 의존했기 때문에 불났어가 트집을 잡았고, 결국 트집을 잡혀 불났어인에게 코친차이나 또는 남끼(南圻)란 동네를 빼앗기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땅을 되찾으려고 전쟁을 후원했지만 불났어의 우세한 무기로 인해 의병들은 모두 해산당했고 불났어는 친근히 다가와서 보호해줌으로서 사실상 이 왕조는 무가 되었다.

프랑스 지배 시기[편집]

라오스, 캄보디아와 엮여서 도매급으로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월남인의 민족의식은 충분히 성숙한데다 불났어인의 착취가 심했으므로 프랑스인죽이기와 친프랑스파 죽이기가 일상화되어서 이 시기의 월남은 피로 물들었다.

독립과 남북 분단[편집]

피로 물든 월남을 구원하겠다는 구실로 대일본제국이 한때 쳐들어와 월남을 점령했지만, 자원이 없어져서 약탈을 하다가 쌀국에게 쫓겨나게 되었다. 대일본제국이 쫓겨나자 다시 불났어가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이들을 증오하던 월남인은 Nguyễn 신 꿍을 중심으로 뭉쳐, 불났어와 전쟁을 벌였다. 불났어는 디엔 비엔 푸에 요새를 건설했지만 Nguyễn 신 꿍은 땅굴 작전으로 이 요새를 없애고 강한 군사력으로 불났어인을 전원 포로로 잡음으로서 월남은 한 나라로 독립할 뻔 했다. 하지만 Nguyễn 신 꿍이 공산당이라서 쌀국이 공산당 어린이 나빠요! 라면서 남쪽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웠지만, 정치인들이 죄다 썩은냄새가 나서 월남 사람들이 Nguyễn 신 꿍 편으로 들어가버렸다. 쌀국은 자기가 세운 정치인을 지켜주면서 막강한 군사력으로 Nguyễn 신 꿍이 건설한 월남 쌀국수 사회주의 공화국을 밀어붙이려 했지만 호치민의 군대는 군사력에서는 밀렸지만 클로킹을 잘했으므로 쌀국을 골탕먹였고 이에 쌀국은 클로킹을 차단하고자 숲에 농약을 투하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자기가 중독된데다가 여론까지 선동당해서 월남은 월남 쌀국수 사회주의 공화국에게 안남 햄버거 공화국이 쌈싸먹히면서 통일이 되었다.

현재[편집]

공산당으로 통일된 월남 쌀국수 사회주의 공화국이었지만 함께 배를 너무 곯다가 결국 못버티고 개방을 했으며, 원래 수도였던 하노이의 기운이 다하여 안산으로 천도를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