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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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예술은 역사를 소재로 하여, 과거에 있던 사건, 민족, 국가 등에 미화, 생성, 제거 등의 기법을 이용해 역사를 더 간결하게 혹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의 한 장르이다. 일반적으로 기존에 있던 것에 대한 창조, 제거 등을 가리키나 넓게는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이루는 것도 포함한다.

역사 예술의 기원[편집]

인간은 예로부터 과거 자신의 존재를 미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존재했기 때문에 역사 예술은 예부터 전설, 신화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문헌을 토대로, 세계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역사 예술은 중국 은나라 초기부터 등장하였다고 보며, 현대적 형태의 역사 예술은 진나라 분서갱유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헤로도토스[1]가 역사 예술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 예술의 역사[편집]

주요 사건[편집]

여기서는 역사 예술의 역사 중 매우 중요한 사건을 모아놓았다.

  • BC 1600년경 : 나라에서 나라 마지막 왕을 폭군으로 묘사하다. 이는 최초의 역사 예술로 알려져 있다.
  • BC 460년경-420년경 : 헤로도토스에 의해 역사가 쓰이다. 이 책 안에 부분적으로 역사 예술이 포함되어 있어 서양 최초의 역사 예술로 평가된다.
  • BC 213-212년 : 나라의 진시황이사가 분서갱유를 하다. 이때 역사책이 많이 탔기 때문에 최초의 전위 예술로 평가된다.
  • BC 109년-91년 : 사마천에 의해 사기가 쓰이다.
  • 1400년경 : 나관중에 의해 삼국지연의가 쓰이다.
  • 1500년경 : 스폐인, 포르투갈에 의한 한 나라의 역사 기록을 모조리 파괴하는 예술 행위가 성행하다.
  • 17세기-18세기 : 양놈들에 의한 문화재 수탈, 민족문화 파괴 등의 전위 예술이 유행하다.
  • 1910년-1945년 : 에 의해 최초로 실존하는 나라의 역사에 역사 예술이 시도되다.
  • 1980년-현재 : 왜에서 새 역사 교과서를 발표하다. 이는 예술 작품을 역사 교과서로 쓰는 드문 사례중 하나이다.
  • 2000년경 : 공정이 발표되다. 이는 현재까지 발표된 작품 중 가장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것이다.
  • 현재 : 영국, 불났어 등의 박물관이 수탈 문화재 반환을 거부하고 뻐기는 중. 이는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행위 예술이다.

고대의 역사 예술[편집]

초기의 역사 예술은 성경, 단군 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들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대개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것이라 역사로 보지 않고, 그러므로 대개는 역사 예술로 보지 않는다. 고대 국가가 발전하고, 문자가 생기면서,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역사 예술의 역사'라 하면 이 시기 이후의 역사 예술부터 다룬다.

현재까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최초의 역사 예술은 기원전 1600년경에 있던 나라의 역사 예술이다. 이는 하나라의 왕을 매우 매우 매우 심각한 폭군으로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당연히 기록으로 남겨져있으리라 믿어지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실제 작품이 현존해 있지 않고, 하나라의 존재조차 확실치 않으므로 구전된 것이며, 고로 역사 예술이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서양의 역사 예술은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헤로도토스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은 그리스인들이 이란? 사람들한테 가해한 것에 대해서 잘 묘사하지 않고서, 이란이 그리스 인들한테 한 것을 크게 묘사한 역사가 중세 역사 예술의 걸작 중 하나라 평하고 있다.

고대 역사 예술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전위 예술의 등장이다. 진시황이 기존의 역사 예술만으로는 미화성을 표현하기 어려워지자 '분서'와 '갱유'를 도입한 것으로 시작했다.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이후로 전위 예술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사용되었다.[2]

중세의 역사 예술[편집]

중세 초기의 역사 예술 중 문학적인 부분은 듕귁인들에 의해 많이 이뤄졌다. 예를 들어 둘러싸고 밖에 있는 사람들을 '오랑캐'라 명명하더니, 나중엔 그들의 문화를 폄하하고, 그들의 행위를 모두 야만화하고, 자신들이 '오랑캐'들에게 쓴 술책은 '매우 지능적인 행위'라 칭하고, '오랑캐'들이 자신들에게 한 술책은 '이런 누굴까?야만적이고 잔인한 오랑캐들이 우리한테 사악한 짓을 했다' 라고 한 것 말이다. 이런 듕귁인의 예술성은 최근에는 공정으로 표현되고 있다.

중세 역사 예술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스폐인, 포르투갈이 남아메리카에 있던 역사 사료에 역사 예술을 구사했단 것이다. 그들은 원주민의 사원에다 교회를 짓고 마야인의 책들에 파괴성을 가했고, 그들에게 병을 퍼트리는 실험을 함으로써 의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콧대만 높아빠진 영국인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에서 그런 일을 했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에 이 일이 중단되어서 많은 역사 예술 비평가들의 아쉬움을 사고 있다.

근대의 역사 예술[편집]

근대의 역사 예술은 주로 하얀 놈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은 예술 재료를 구하려는 목적으로 외부에 있는 문화재를 가져갔는데, 이 와중에 많은 문화재가 바다나 쓰레기장에 버려지고, 귀금속으로 된 문화재들은 녹아서 동전이 되고, 도자기는 깨지고, 그나마 남은 것들도 녹이 슬거나 색이 희미해지는 등 자연스레 훼손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구해온 재료를 쓰지 않고 쌓아 놓았고, 현재도 그 재료들은 박물관에 방치되어 있다.

하얀 놈들은 문화재뿐만 아니라 국가, 심지어 사람들의 의식에다가도 역사 예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오리엔탈리즘, 민족주의, 백인 우월주의, 아프리카의 식인종, 세계 대전, 아랍인 테러리스트, 세계사 교과서, 의 정신세계 등이 생겨났다.

현대의 역사 예술[편집]

현대 역사 예술도 고대 역사 예술에서 크게 변한 게 없다. 위의 사진은 나치의 분서.

현대의 역사 예술은 소규모 형태에서 대규모 형태로 진화했다. 이때 역사 예술을 위해 많은 전쟁 기술과 역사 서술 기법들이 도입되었고, 대중 매체의 발달에 따라 역사 재해석이 활발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현대 역사 예술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범위의 확장이다. 예전에는 인간의 역사에다가만 역사 예술을 적용시켰으나, 근현대 역사 예술에서는 필트다운인에서 볼 수 있듯, 생명의 변천사 등에도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역사 예술의 특징[편집]

미화성[편집]

일반적으로, 역사 예술은 자신들을 드높이고 싶어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 욕구는 역사 예술을 통해 표출되는데, 이를 역사 예술의 미화성이라고 부른다. 역사 예술은 미화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초창기의 역사 예술 작품은 모두 미화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고도화된 수법이 발달하여, 직접적으로 미화성만을 표출하여 만든 작품은 드물게 되었다.

허구성[편집]

역사 예술, 특히 기록 역사 예술은 필연적으로 사실을 변형시키거나 사건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역사 예술의 허구성이라고 부른다. 역사 예술의 미화성은 허구를 통해 표출되므로 이는 미화성만큼 중요한 요소이다. 미화성이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초창기 역사 예술은 대부분 허구성이 짙다.[3] 하지만 요즘은 허구성이 드러나면 감동을 주기가 어렵기 때문에, 점점 사실적인 것처럼 숨겨진 형태의 작품이 늘고 있다.

파괴성[편집]

역사 예술은 어떤 것을 미화하거나 생성하는 것만 포함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제거, 파괴, 삭제하는 것도 역사 예술로 불리는데, 이것의 기법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파괴성이 강하다'라고 한다. 만약 그것이 자국 문화재에 적용된다면 '훼손되었다'고 하고, 타국 문화재에 적용된다면 '발굴 작업 중 실수', '우리는 이런 적 없소' 등으로 부른다.

최초의 인간들은 너무나도 순진해서, 작품에 파괴성을 도입하지 못했다. 이를 최초로 도입한 것은 진시황인데, 그는 기존의 역사 예술만으로는 미화성을 표현하기 어려워지자 작품에 파괴성이란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고, 그 결과 '분서'와 '갱유'라는 전위 예술이 등장할 수 있었다.

창조성[편집]

역사 예술이 허구성을 띄는 만큼, 당연히 창조성이 있다. 창조성이 허구성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창조성은 허구성이 없어도 존립할 수 있단 것이다. 창조성은 꼭 허구를 만들어내는 것만을 포함하지 않고, 작은 구멍에 큰 단추 꿰기?, 누가 봐도 토기임이 명백한 흙쪼가리를 고려청자라고 우기는 것 등에도 포함된다. 창조성은 과거부터 역사 예술에 필수적인 요소였으며, 요즘에도 필수 요소인데, 특히 현대에는 듕귁, 왜국동북아시아 지방에서 많이 드러나는 요소이다.

역사 예술의 장르[편집]

사료 개작[편집]

사료 개작이란 기존에 있었던 사료에 파괴성, 창조성 등을 가해서 사료가 지니는 의미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료 개작은 기록 사료 개작과 유형 사료 개작, 무형 사료 개작으로 나뉘는데 유형 사료 개작과 무형 사료 개작은 대부분 우연의 기법이 도입되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거나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사료 개작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기록 사료 개작을 의미한다.

사료 개작은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취하기 때문에 최초의 역사 예술도 이런 형식을 취하였고, 초기의 역사 예술은 사료 개작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료 개작은 그 파괴성과 창조성이 도를 넘기 시작했고, 비판받으면서 현재는 대놓고 사료 개작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인류가 모두 제거 수술을 하지 않는 한, 미화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사료 개작은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사료 창작[편집]

사료 창작은, 말 그대로 새로운 사료를 만들어 역사를 바꾸려는 모든 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료 창작은 사료 조작이 갖는 '직접적인 미화성 표출'이란 비판을 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등장했다. 그런 만큼 파괴성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비교적 비판이 적은 편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료 창작은 많지 않고, 잘못 만들면 예술성 표현이 심하게 안되고, 창작자도 평생 못 먹을 만큼 욕을 먹어야 할 수도 있다.[4] 또, 시간적으나 금전적으로나 낭비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사료 창작은 사료가 없더라도 미화성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므로 사료를 구할 수 없는 개인들에 의해 종종 이루어진다.

사료 복구[편집]

과거의 석탑과 현대 시멘트와의 조화를 이루려다 실패한 작품의 대표적인 예

사료 복구란 기존에 있던 훼손된 사료를 복구하면서 그 문화재에다 미화성, 파괴성, 창조성 등을 가해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을 말한다. 사료 복구는 주로 자신들이 갖고 있던 문화재에 이루어지며, 크게 자신의 조상들이 만든 문화재에 창조성 등을 가하는 사료 미화와 타민족이 만든 문화재에 파괴성 등을 가하는 사료 비하로 나뉜다.

사료 복구는 다른 역사 예술 분야들에 비해 매우 어렵다. 뿐만 아니라 미화성 등도 잘 표출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료 복구는 매우 자연스럽게 사료에 미화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사료에 예술이 부여되었단 사실을 감출 때 사용된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잘못 만들면 옆에 있는 시멘트 석탑 꼴 되는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사료 재해석[편집]

사료 재해석은 주어진 사료에 매우 특이한 해석을 부여하는, 역사 예술의 분야 중 하나이다. 넓은 의미로는, 사료에 주어진 기존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부여하는 모든 행위를 가리킨다. 그래서 사료 재해석을 역사 예술로 취급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넓은 의미의 사료 재해석이 아니라 실증할 수 없는 사실을 근거로 하는 과도한 역사 해석만 할 것이니 잘 알아 두거라. 알겠나?

사료 재해석은 현재까지 알려진 역사 예술 중에서 제일 값싼[5] 역사 예술법이다. 게다가 사료 재해석은 사료를 훼손할 일이 없으므로 환경 오염이 적다는 평을 받고 있고, 친환경 추구 시대인 21세기에 뜨고 있는 분야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종종 이는 미화성을 추구하는 방향이 아닌 논리만을 좇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도보시오[편집]

주석(Sn)[편집]

  1. 한번 생각해보라구. 어느 멍청한 놈이 쬐끄만 땅 먹겠다고 270만명이나 끌고 가냐? 모르겠다고? 요거 봐봐.
  2. 뭐라고? 모르겠다고? 예를 하나만 들어주지. 400년경, 어떤 상태의미친 기독교인들이 히파티아를 잔인하게 죽이고 알렉산드리아의 책들을 많이 태워먹었어. 그래도 모르겠어?
  3. 예를 들면, 건국 신화같은거 말이지
  4. 논란: 사실이 아니다. 창작자 본인은 기억 못한다 하더라.
  5.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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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버전: 2013년 3월 27일 요약된 버전: 역사 왜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