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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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는 1915년 사람들이 한강에 떠오르면서 명명된 지역이다. (여기서 인천(人川)이라는 말이 나왔다.) 대한민국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제 항구인 인천항은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리고 인천이 2009년 2월 28일 이후로 5년간 자치권의 위기를 겪었으나 인천세계도시뷁스포의 영향으로 부활했다.

개요[편집]

인천은 1915년 과도하게 팽창한 대한게임국의 인구 분산을 위해 생성된 지역이다. 급하게 만든 결과 원래 시의 덕목의 반만 적용돼서 인천의 시의회은 반만 건설되어 있으며 시청도 반만 만들어져있다. 또한 시민들도 반으로 쪼개진 집에서 살고 있어서 정식 명칭인 인천광역시 외에 별칭으로 인천반쪽시라고도 불린다. 물론 이것은 인천을 음해하려는 코사크들의 악행으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부르면 안 된다.

인천의 사이다[편집]

인천은 항구도시로 유명한데, 특히 인천에 있는 천연자원인 사이다로 더욱 유명하다. 인천 시민들이 매일 소비하는 50톤의 사이다에 해외 수출량을 생각해도 대략 1억년 가량을 쓸 수 있는 사이다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5천만년 가량을 쓸 수 있는 사이다가 추가 발견 되었다 카더라. 사이다를 매우 좋아하는 인천 시민들은 별식으로 사이다에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 사실 인천에서는 사이다를 먹지 않으면 괴상한 사람 취급받게 되며 코카콜라의 간첩으로 오인받아 추방조치, 심하면 사형이 언도될 수도 있다.

인천 속담에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꼽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라는 말이 있다. 뜻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취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쓸모없다'는 말로써 이러한 이유로 인천에 갈 때는 항상 사이다를 떠먹을 컵을 지참해 가도록 하자. 컵이 없다면 관광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일정량의 돈을 지불하고 컵을 빌릴 수도 있다.

농업혁명 그 후[편집]

농업혁명이 일어난 후 인천은 크나큰 타격을 받게 된다. 농업혁명군의 침공으로 인천의 80%가 쑥대밭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인천은 농사를 짓기에 좋은 기후가 아니었고 사이다는 농작물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는 것이 확인되어 농업혁명군은 재빨리 철수했다. 그 후부터 인천에서는 농업혁명군 격퇴를 축하하는 의미로 밥을 사이다에 말아먹는 풍습이 생겼다.

시장 선거[편집]

인천의 시장 선거는 정정당당한 승부 하에 이루어진다. 인천 앞바다에 떠있는 사이다를 빨대를 꽂아 가장 많이 마시는 사람이 시장이 되는 것이다(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해 이때 컵은 쓰이지 않는다). 쿡케이원도 같은 방법으로 뽑으며 인천의 12대 시장이었던 김인백(金人魄, 1984~2083) 의 경우 총 751리터의 사이다를 마셔 시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직후 사이다의 부작용인 탄산가스 역류로 인해 곧바로 사망했기 때문에 316리터를 마셔 2위를 기록한 13대 시장인 최달수(崔疸隋, 2001~2142) 시장이 인천을 통치하고 있다.

제물포기독공화국의 침공[편집]

인천항[편집]

인천시국의 인천항은 제물포기독공화국 국민들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물포기독공화국 국민에게는 인천항의 이용료가 몹시 비싸서 제물포기독공화국 정부에서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199x년 x월 x일, 제물포기독공화국의 대통령 초다빗에게 신의 계시가 떨어져서 인천공화국을 본격적으로 침공하게 된다. 선전포고를 거친 후 제물포기독공화국의 10만 인천십자군이 국경인 제물포역을 넘어가게 되니, 이것이 인기 전쟁(인천시국-제물포기독공화국의 전쟁. 역사가에 따라서는 인천전쟁이라고 하기도 함)의 시작이다.

인기 전쟁 이후 인천항은 제물포기독공화국의 소유이며, 현재 항구의 기능은 항공 교통과 철도 교통, 도로 교통 등 경쟁에 밀려 쇠퇴된 상태이다. 이것은 특히 제물포기독공화국에 인천국제공항이 세워진 뒤 가속화되었다. 인천항의 쇠퇴는 인천시국이 재건된 후 정지된 상태이나 아직도 물류량은 부산항과 인천국제공항에 밀려 적은 편이다.

제1차 인기 전쟁[편집]

초다빗 대통령의 일방적인 선전포고에 분노를 한 최달수 대통령은, 인천기독공화국으로 사이다 수출을 일절 끊게 되고, 제물포기독공화국의 일방적인 선전포고는 대한게임국 내의 다른 자치국으로도 알려져서 제물포기독공화국은 경제적으로 대부분의 수출입이 막혀서 인천시국으로 침공을 한 인천십자군들에게 물자보급이 완전히 끊기게 되고, 인천공화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으며, 오히려 이 인기 전쟁에서 인천시국의 장군인 칠성(七星)장군과 긴(緊)장군의 활약으로 인천기독공화국의 중심지 중 하나인 주안역 인근을 점령하게 되었다.

대한게임국에 불어온 웰빙바람, 그리고 전세 역전[편집]

분노한 제물포기독공화국의 초다빗 대통령은, "하나님, 왜 저희를 도와주시지 않는 겁니까" 라고 단식기도를 하였고, 그 단식기도가 1000일 째 이어지던 날, 초다빗 대통령의 기도에 응답을 하였던지 마침 대한게임국 전체에 웰빙바람이 불게 되었다. 웰빙바람을 통하여 대한게임국 전체에서 콜라, 사이다 등의 청량음료와 맥도널드 등의 패스트푸드점은 직격타를 맞게 되었다. 인천시국 내에서는 개의치 않고 국민들이 사이다를 계속 마셨으나, 수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국가경제에 위기가 찾아왔다.

제2차 인기 전쟁[편집]

설상가상으로, 인천시국이 국가경제가 부도사태에 빠져서 나는에프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이에 제물포기독공화국은 또다시 전쟁을 선포하며, 이번에는 한 손에는 총, 한 손에는 성서를 든 강화 십자군들이 대거 빠져나왔다. 게다가 국가 경제가 어려운 인천시국으로 제물포기독공화국의 설교테이프가 계속해서 배달되어서 기독교로 개종한 국민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미 나라의 운명은 기울어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새 국경이자 요충지인 주안역을 지키고 있는 인천사이다공화국의 병사들은 맥없이 무너질수밖에 없었고, 제물포기독공화국은 그 기세를 몰아서 주안역, 제물포역, 동인천역 인근까지 점령하게 되었으며, 인천시국의 영토는 인천항 부근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항복문서 서명[편집]

인천항의 인천시국 대통령궁을 완전히 포위한 제물포기독공화국의 십자군은, 완전히 사면초가(四面草家 - 사방이 초가집으로 둘러싸여 있음) 상태에 놓인 인천시국의 대통령 최달수를 향해서 계속하여 설교와 기도를 하며 찬송가를 불렀고, 마침내 나라의 운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에서 인천시국의 대통령 최달수는 항복문서를 제물포기독공화국의 초다빗 대통령에게 넘겨주고, 인천시국이라는 국가는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했다.

인천시국 부흥군[편집]

항복문서 서명식이 국민들에게 전해지자, 국민들은 분노하며 인천항으로 가 수백개의 배를 타고 근처의 작은 섬인 사이다섬으로가서 비장의 무기인 사이다물국을 비밀리에 개발, 항복문서 서명식이 있은지 3일만에

부흥의 깃발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콜라섬으로 피신해 있던 칠성장군과 킨장군도 휘하의 부흥군을 이끌고 인천사이다상륙작전을 벌여 사이다물국을 발사, 순식간에 인천항의 80%를 장악하게 되었다.

대통령궁에 연금되어 있던 최달수 대통령은 이 소식을 비밀리에 듣고 탈출, 소수의 패잔병을 이끌고 국회의사당을 탈환, 부흥군과의 연락을 취하게 되었다.

사이다톨 개설과 제3차 인기 전쟁[편집]

최달수 대통령은 인천항 일대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부흥군 세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칠성장군과 킨장군에게 사이다톨?을 개설하도록 일렀다. 곧이어 사이다톨이 개설되고, 국회의사당으로 각지의 부흥군과 의용군, 패잔병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최달수 대통령은 즉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항복문서 무효화와 제 3차 사기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최달수 대통령은 현재의 병력으로는 제물포기독공화국을 이길수 없음을 알고, 경기연방국과 비밀리에 협상해, 동맹을 맺는데 성공했다.

제3차 인기 전쟁[편집]

인천시국이 전 병력을 투입해 제물포역과 동인천역 부근을 공격하자, 경기연방국과 안산연방은 꼬투리를 잡아 제물포기독공화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인천시국의 신무기 사이다물국과 연합군의 상륙작전에 너무나 힘없이 강화 십자군은 무너지고 여세를 몰아 인천시국군은 사이다물국을 제물포기독공화국 전역에 뿌려대기 시작하며 주안역 전투에서 제물포기독공화국은 멸망하였다. 그러나 제물포기독공화국 정부와 초다빗 대통령은 패전소식을 듣고 일부 정치인과 國K-1, 국무위원들과 함께 북부천으로 망명해 경기남도를 자극, 공격하여 경기서도를 무너뜨리고 인천시국을 위협하였다. 이에 동맹관계에 있던 안산연방은 전병력을 인천시국 지역으로 투입하여 인천시국군과 연합, 구 경기서도의 도청과 옛 지역을 장악, 경기서도를 재부활시키고 제물포기독공화국을 완전히 쓸어버렸다. 때맞추어 인전세계도시뷁스포가 시작되자, 이를 빌미로 인천시국군은 테러 방지라는 핑계를 대고 구 제물포기독공화국 지역으로 들어가 전지역을 사이다로 덮어버렸다. 그러나 이명박대통령과 소망교회의 백만대군의 패치를 받은 제물포기독공화국 부활지지자들이 사이다를 콜라로 씻어내 정결케 한후, 쌀국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데 성공, 척 노리스를 선동하여 옆돌려차기로 인천시국의 대부분이 멸망했다고 카더라

현재[편집]

현재는 인천시국 제 13대 대통령 최달수를 수반으로 한 제 1기 인천 임시정부가 구성되어 있다. 얼마즘 뒤면 인천시국 국민들도 닥터피쉬의 음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가奀부가 금지하여 힘들꺼라는 호롤롤로교수의 견해가 있다고 하는데 알게뭐야. 제물포기독공화국을 신경 쓰지 않고 국민들은 사이다만 마시고 있다고 한다. 인천시국의 독립을 대한게임국 자치국들과 대한게임국 정부-이명박가 방해좀 했다고 하는데 며느리도 모른다-가 공식으로 인정한 그날, 인천시국 제 1기 사이다 임시정부의 청사인 구 인천시국 정부중앙청사에 엄청난 양의 사이다와 삼겹살이 빨려들어가듯 들어갔다고 한다.

위험[편집]

현제는 인천시국과 제물포기독공화국사이에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안산연방이 제물포기독공화국과 dltkdgks wjswod?을 하는 중이라 언제 제물포기독공화국이 다시 시비를 걸지 모른다. 그리고 쌀국이 자신들만의 사이다를 개발, 인천시국을 위헙해 언제 몰락할 지 며느리도 모른다

도보시오[편집]

틀:경기 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