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시벨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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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어뜩하지? 납득이 안돼요 납득이!
장 시벨리우스

“제길, 나보다 유명한 인간이 있다니!”

오스카 와일드, 핀란드에서

“이런 시벨리우스.”

흔한 대한민국의 언어 순화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혹은 잔 시벨리우스대한민국에서는 듣보잡 취급을 받지만 핀란드에서는 매우 유명하다 못해 숭배하는 인물이며, 심지어 핀란드의 대통령이 누군지 몰라도 시벨리우스는 모든 핀란드인들이 알아? 핀란드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다. 핀란드 어딘가에는 그를 기념한 흉상과 그의 박물관, 대학교 등을 세워 그를 기념하고 있으며, 유로를 쓰기 전까지 핀란드의 100마르크 지폐에도 등장하였고 심지어 12월 8일을 대놓고 시벨리우스의 날로 지정하였다. 물론 휴일 따위는 없는 것이다.

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시벨리우스는 소리 세기의 단위인 데시벨의 시초가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사실 그는 가분수였다.

그는 알콜 중독자에 골초여서, 40대 후두암 판정을 받았다. 그 이후 조금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완쾌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또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꽤 오래 산 편이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술을 좋아하면서도 작품을 쓰고 있을 때만큼은 근처에 있는 호수에서 을 퍼다가 마셨다. 그러나 수전증이 있는 그는 물을 마시며 악보에 그 물을 자주 쏟곤 했다. 그 덕분에 그의 작품은 언제나 물로 흥건했는데, 이를 보고 한 작곡가는 다른 작곡가들이 위스키를 제조할 때 그는 차가운 물을 제조했다는 평을 하였다.

한편 그의 아내인 아이노 시벨리우스는 핀란드 교육 따위 먹는 것이냐고 하며 자식을 에서 교육시켜 그 아이들을 모조리 대학에 보내 매우 좋은 모델로 꼽히고 있는 핀란드의 교육 방식을 먹였다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작품[편집 | 원본 편집]

“으하아... 취한다. 이보시오, 오선지, 오선지 좀 주시오.”

시벨리우스, 조국을 잃은 마음에 크게 상심하여

그는 여러 교향곡을 썼으며, 핀란드가 러시아에게 잡아먹힌 가혹한 현실이나 자연 경관을 작곡하여 여러 핀란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핀란드의 마법 금서인 칼레발라에게 정신을 지배당하여 미친 듯이 곡을 써내려갔다. 이 금서의 영향으로 그는 핀란드를 마법에 홀리게 하였으며, 모든 핀란드인들이 그를 기억하도록 세뇌시켰다. 그 세뇌물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op 26. 핀란디아다. 핀란디아는 러시아 강점기 때 핀란드인들의 애국심을 불러일으켰으나, 애국심을 방해하려는 러시아와 독일, 그리고 스웨덴 이 3국이 힘을 합쳐 핀란디아를 제거하는 바람에 최근까지 핀란드인들은 독일인이 작곡하고 원본 가사가 스웨덴어로 작성된 maamme를 국가로 불렀다. 그 후 얼마 전까지 노키아 튠을 부르다가 최근에는 노키아가 지고 로비오의 위상이 높아짐을 생각하여 앵그리 버드 테마로 국가를 바꾸었다. 그나마 핀란드인들에게 핀란디아가 남긴 것은 시벨리우스가 작곡할 때 마신 술이었는데, 핀란디아라고 하는 이 술은 핀란드인들을 보드카 덕후로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그의 곡 중 칼레발라 시리즈는 엘리아스 뢴로트가 칼레발라의 마법 언어들을 인간들의 언어로 컴파일하기 전의 힘을 기억하고 있어, 연주를 할 때마다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적을 몰아낼 수 있는 마법이 생겨났다. 이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는 그의 여러 작품이 연주되는 것을 경계했으며 특히 러시아에서 그의 마법을 중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으나 결국 핀란드가 독립하기 전까지 손을 쓰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그 마법의 능력은 서서히 상실되어, 현재는 오직 핀란드를 홀리는 마법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화음이 좋은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1950년대 핀란드에 락이 성행하면서부터 락커들은 그의 노래를 헤비 메탈 버전으로 바꾸어버렸다. 그는 이미 죽었지만 자신조차도 핀란디아의 노랫소리에 홀려 잠시 깨어났다가 핀란드의 을 듣자 투덜대면서 귀를 틀어막고 다시 무덤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노래가 지루한 탓도 있는데, 실제로 수업 시간에 이 음악을 들려주면 10명 중 9명은 에 빠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그의 곡은 마법의 노래 대신 수면제로의 효과가 입증되었다. 핀란드에서 수면 유도제를 처방받으면 그 보조 약품으로 시벨리우스의 음악 CD 혹은 mp3 파일을 준다.

작곡 프로그램[편집 | 원본 편집]

그는 컴덕 혹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도 유명하였는데, 시대를 앞서는 능력이 있어 그의 말년에는 그에 맞는 하드웨어가 채 개발되기도 전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놀라운 선견지명을 발휘하였다. 그 이후에도 시벨리우스라는 프로그램은 후손들에 의해 계속 개발되고 있다. 판매비의 절반은 시벨리우스를 기념한 건물 혹은 단체에 기증한다.

도보시오[편집 | 원본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