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프리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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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e empire centrafricain
뤼대한 중앙아프리카 제국
중아프리카
Flag of CAR.png Coat of Arms CAR.png
(국기) (문장)
표어: 유니뜨, 디니뜨, 트라발
국가: 군주를 찬양하라
LocationCentralAfricanEmpire.PNG
공용어 불났어, 기타 다수
수도 방귀를 비롯한 군소 도시들
큰 도시 난민캠프, 카메룬 폐허촌
정부 절대군주제
초대 원수 쟝 베델 보카사Ⅰ
현재 원수 프랑수와 드 쒸르오Ⅲ
설립 BC. 2300
화폐 통합 중아프리카 프랑(UCF)
종교 다종교 국가.
면적 확장중.km2

중앙아프리카 공화국?(불란서것들 말: 레휘뿔리끄 상뜨라후리껜)은 아프리카 중앙부를 제패한 자칭 초일류국가이다. 인접국가로는 중아공의 식민지인 적도 기니, 카메룬과 복속될 예정인 나이지리아, 차도 공화국, 콩까지마가 있으며 남아공과는 대립관계이다.

역사[edit]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edit]

BC n년, 우방기강 유역에는 상고족이 수렵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이 무렵의 우방기 강에서는 유독 참치가 잘 잡혔는데 이 참치를 먹고 DHC가 다량으로 높아진 상고족은 으쌰를 하며 콩고강 유역까지 남하하였다. 상고족들은 당시 강 상류에 수렵하는 이민족들(콩까지마족, 콩볶지마족, 콩코드족, 콩나물족 등)을 복속하였으나 우방기강 하류의 씨족 콩라인족의 수장인 응귀그미 콩지노는 상고족 전사의 총사령관 살리타에게 작은 고추의 매운맛을 보여준다고 호언장담하여 치열한 항쟁을 벌인 끝에 살리타를 금지 사항입니다 하여 상고족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었다.

낙담한 상고족들은 우방기 강으로 정주하여 자신들의 정복지인 우방기강 서안에 상고 왕국을 세워 14세기까지 낚시로 큰 부흥을 이루었다. 그러나 15세기 이후 중아프리카의 정서가 그야말로 개판 0.5초 전 상태가 되면서부터 상고 제국의 존망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결국 차도 호수 인근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산악민족 아우토반 족의 침입으로 상고 왕국은 멸망하고 차도 왕국에 인수된다. 이후 많은 상고족들이 모여 대테러조직인 상고 조국과 자유(Sängö Homeland and Freedom) 을 결성하여 19세기까지 상고 왕국 부흥 운동을 전개하여 차도 왕국의 기강이 약해진 때를 틈타 정통 상고 왕국, 진짜 상고 왕국, 참 상고 왕국, 진땡이 상고 왕국, 통일 상고 왕국 등 남부에 수많은 군소 국가들을 세워왔다.

불제강점기(佛帝强占期)[edit]

그러나 19세기에 들면서 제국주의 놀음이 성행하며 구라파 코쟁이들이 먼 나라 이웃 나라에 순회 공원을 갔다. 중아프리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중 불란서인들은 강성했던 서아프리카의 송가이 제국말리 제국을 복속하고 중앙아프리카로의 진출을 꾀하였다. 무지몽매한 불란서인들은 구식이라는 이유로 차도 왕국의 유구한 교통망을 파괴하고 콩고강 유역에서는 을 까는가 하면 상고족들에게는 독가스를 살포하는 이른바 방기 학살 사건을 저질렀다. 그러나 세계 2차 대전을 전후로 불란서의 정력도 쇠하기 시작하더니 앞다퉈 영길리에서는 식민지들을 배설하였고 이에 질쎄라 불란서도 그 누구보다고 빠르게 아프리카의 여러 식민지를 싸질렀는데 그 변중 하나가 중앙아프리카였다.

제정확립[edit]

태조 박가사(博卡薩)의 어진.

중앙아프리카의 독립 이후 상고 왕국의 터전에는 國K-1식 민주 공화정이 세워지게 된다. 하지만 불란서의 모진 수탈로 중앙아프리카의 땅은 황폐하기 그지 없었고 정치권의 부패와 지도자의 독재로 인해 중앙아프리카에는 극심한 혼란이 지속되었다. 이러한 현실에 성질이 뻗친 상고 왕족의 태자 장베델 응글라 세세 응귈랑긔 두두부 보카사는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강제로 폐지하고 왕정을 선포하여 스스로를 보카사Ⅰ라 칭하였다.

선군인 태조 보카사는 탁웛한 전투능력으로 제국의 영토를 14.68 ㎚ 더 늘려 연운 16주를 할양받았다. 태조는 참치잡이 어민들까지 섭렵하여 물고기창으로 인근의 전기뱀장어들을 처단하고 차도 공화국까지 진출을 꾀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차도 공화국에서 불란서로 군사를 요청하여 야만스러운 불란서군을 통해 태조의 북진정책을 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