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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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역사(핀란드어: Suomen historia, 스웨덴어: Finlands historia)는 곧 스웨덴의 역사 핀란드가 약해빠졌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대인배 국가 소질의 답안 중 하나로 지목되는 하나의 단편 서사시다.

선사 시대[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핀란드-한국 초월전쟁입니다.

핀족이 제대로 핀란드에 정착하여 살아간 것은 옛날 옛적이었다. 그러니까 까마득한 기원 전 오래 전에도 핀족은 핀란드에 있었으며 여기에 망치도끼족이라는 무자비한 종족이 들어와서 석기시대부터 이미 잡종이 되어 있었다. 사실 핀란드는 현재도 유럽에서 몽골 혈통이라고 놀림당하기 일쑤지만 그렇다기에는 금발도 많고, 사실은 핀란드도 환국과 맞먹을 정도로 매우 컸던 시절부터 이미 오랫동안 잡종이었기 때문에 혈통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전쟁 이후[편집]

전쟁이 모든 것을 휩쓸어간 이후, 땅히 척박하여 청동은 남의 나라 전설 속에나 나오는 특이한 아이템이었으며, 철기 시대가 된 이후에도 1100년대가 될 때까지 아무도 나라 전체를 지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땅에서 짜지며 살아왔다. 자신의 땅에서 먹고 살 거리가 없자 살길은 무역뿐이라고 생각하여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와 교류했는데, 이 때부터 핀란드는 에스토니아가 자신의 식민지라는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핀란드는 나무칼(puukko)이라는 무자비한 무기를 개발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후에 스웨덴을 공격하기 위해 잘 간직하고 있으라는 조상들의 선견지명이 담겨 있었다.

스웨덴 체제[편집]

1155년 성 에릭은 핀란드로 예수쟁이를 전파시켜 하나님께서 핀란드라는 땅을 따로 세우지 않은 이유는 스웨덴의 일부라는 정체성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세뇌시켰다. 그리고 이것을 훌륭하게 핀란드어로 된 시(surmavirsi)로 승화시킨 사람이 영국 출신 성 헨릭이다. 물론 그의 시를 본 핀란드인들은 열이 받은 나머지 헨릭을 찢고 뜯고 맛보며 죽였다. 그러나 스웨덴 아래 핀란드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그냥 국가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개념이 없었는지 중세 시대에도 농노 개념이 없이 평화로웠다. 한편 미카엘 아그리콜라 역시 성경핀란드어로 번역하여 부엌칼 구스타프에게 바쳤지만, 핀란드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웨덴인들은 관심이 없었다.

1300년대 스웨덴 중부에는 먹을 것이 잘 자라지 않았는데, 굶주림에 지치던 스웨덴인들은 핀란드 남부 바닷가가 농사가 워낙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솔깃하여 핀란드 남부로 들어왔다. 물론 그 전에도 헬싱키 등지에 바이킹은 이미 출몰하고 있었지만, 이로 인해 핀란드는 종족 짬뽕임을 확인사살하였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스웨덴어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원흉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스웨덴 체제 초기에 핀란드는 스웨덴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칼을 이용해 스웨덴을 썰어버리려고 애썼으나, 스웨덴은 그 칼과 칼집에 을 묻히는 작전을 썼고 결국 한겨울에 칼이 빠지지 않아 그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렇게 핀란드는 거의 700년간 지배를 받았는데, 세월이 지날 수록 점점 포기하면 편해라는 교훈을 얻게 되고 이로 인해 스웨덴과 그럭저럭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 앙금이 있던 스웨덴은 대북방 전쟁이 있었을 때 핀란드를 전쟁 무대로 삼을 것을 제안했고 결국 핀란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스웨덴은 잘 다독여주는 척을 하였고 핀란드는 그런 스웨덴을 째려봤는데...

러시아 체제[편집]

핀란드를 호시탐탐 노리던 러시아는 핀란드 전쟁을 통해 1809년에 스웨덴으로부터 핀란드를 뺏게 되었다. 그리고 흥에 겨운 나머지 핀란드에게도 보드카를 권하여 같이 취하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핀란드는 자체 생산한 보드카를 내놓으며 러시아의 보드카를 거부하였고, 이것에 빡친 러시아는 본심을 드러내어 핀란드를 꽉 죄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이를 강력하게 거부하기 시작하며 러시아와 본격적인 대립 구도를 드러내게 되는데, 이로 인해 핀란드의 애국심 수치가 증가했다. 1835년 의회를 닫았을 때에는 러시아의 의회를 국K-4당처럼 꾸미기 시작하였고,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고 핀란드어를 못 쓰도록 만들었을 때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만 가르치겠다고 버텨 스웨덴어와 영어가 발달하게 되었으며 핀란드군을 러시아군으로 편입시켰을 때는 자체 팀킬을 시전하였다.

이 시기에 태어난 마법소녀가 바로 핀란드 소녀다. 핀란드 소녀는 특이하게도 마법 지팡이 대신 법전을 사용하였는데, 에드바드 이스토의 그림에 따르면 러시아 독수리와의 전투에서 무참히 뜯긴 이후 마력을 잃고 핀란드 북부로 도주하였고, 후에 케미 강을 건너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었다. 그 후 핀란드가 독립하자, 케미 강 근처의 작은 오두막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환생하게 된다.

끈질긴 싸움 끝에, 보블리코프가 암살되고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이 일어났으며 러시아가 소련이 된 틈을 타 1917년 12월 6일 핀란드는 독립을 시켜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내전[편집]

그리고 그 다음 해 1월 23일, 러시아... 아니 소련이 핀란드 땅을 정ㅋ벅ㅋ을 하였다. 이 사태를 막겠답시고 핀란드랑 친한 (척 하는) 독일군이 난리를 친 것이 내전으로 번졌고, 빨갱이 진영(소련 편)과 하양이 진영(독일 편)이 맞붙어 5월 16일 결국 하양이 진영의 승리로 끝났다. 어쨌든 이 일 이후 핀란드 내에서 이념이 갈라져서 사이가 영 좋지 못하였다.

그 후 사실 핀란드는 독일의 왕가를 받아들여 사실상 독일 아래에 있는 국가가 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편집]

겨울 전쟁[편집]

핀란드를 공격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
이 부분의 본문은 겨울 전쟁입니다.

겨울 전쟁은 핀란드를 건드리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이유로 손꼽히고 있...지만, 사실 외부에서 많이 도와준 탓이 크다. 군사 수는 소련군이 5배인데, 피해는 소련군이 10배다. 이에 위키백과는 핀란드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련군이 만만하게 보고 허접하게 준비하여서 그렇다고 매우 진지하게 해명하였다.

그러나 결국 핀란드는 소련군에게 자일리톨과 땅덩어리 모두를 떼어주고 끝났다. 이 일을 계기로, 내전 때문에 소련이 낫다느니 독일이 낫다느니 했던 사람들이 모두 소련 개객기를 외치며 하나가 되었다.

계속 전쟁[편집]

그 이후, 핀란드와 친한 (척 하는) 독일..아니, 나치는 핀란드를 꼬드겨 계속 전쟁이 일어났다. 사실 나치군들은 라플란드에 휴가 차 놀러왔지만, 라플란드가 너무 추워 전쟁의 불을 지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 이유로 핀란드에게 전쟁을 일으킬 것을 제안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얼떨결에 소련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 억울했던 핀란드는 얼씨구나 하고 러시아를 공격하여 카르얄라 지방을 잔뜩 먹기 시작하였다.

핀란드 경계를 지키고 있던 소련군들은 보드카를 마시고 흠뻑 취해 있어 자신들이 핀란드군인지 소련군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이 기세를 타서 핀란드는 소련의 영토를 점령하였다. 나치군은 그것을 도우는 둥 마는 둥하면서, 전쟁의 열기로 라플란드의 추위를 식혔다. 핀란드는 그렇게 고군분투를 하였으나, 나중에 소련군들이 보드카에서 깨기 시작하며 핀란드를 다시 공격하였고, 나치군마저도 제대로 돕지 않은 상태에서 핀란드는 다시 쓰디쓴 패배를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치군들은 "이것은 훼이크였다 그지 깽깽이들아!"를 외치며 라플란드에서 핀란드랑 싸움박질하다가 가버렸다.

그 이후, 핀란드는 카르얄라 지방의 대부분을 뺏겼으며 여러모로 안습해졌다. 후에 일부 핀란드인들은 카르얄라를 돌려달라고 목놓아 외쳤지만, 러시아에서 카르얄라에 자국민들을 강제도 쑤셔넣어 러시아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 후 핀란드인의 손에 남은 것은 카르얄라가 남긴 문화 뿐이었다...

냉전 체제[편집]

핀란드는 양쪽 진영을 모두 무서워해서 GG치고 조용히 살겠다고 선언하며 중립국을 선언했는데, 그 뒤에는 우르호 케코넨이 있었다. 그는 핀란드를 살린 사람으로 남았으며, 이러한 정치 스타일로 인해 극좌나 극우에게 까임방지권 혹은 양쪽까임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까임방지권이 우세한 그는 25년씩이나 정치를 하였다고 한다. 아무튼 중립이라고 선언해버린 핀란드는 어느 진영에도 빌붙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양쪽 진영 다 빌붙는, 동물로 치면 박쥐같은 존재가 된 셈이며 이렇게 되면 배트맨과 같은 종족... 아니 알 게 뭐야. 그래서 자신을 오랜 세월 지배한 스웨덴이나, 지배해서 뜯은 것도 모자라 불가침인지 뭔지 하는 약속을 깨버리고 못살게 괴롭혔던 러시아도 모두 용서하는 연기를 하다 보니 정말로 대인배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까지 대인배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한편 핀란드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모습을 회복하려고 노력을 하였고 그것을 이루었다. 한강의 기적이여 반타강의 기적이여. 그리고 다음과 같은 국산품 장려 운동도 있었던 모양이다.

“Suosi suomalaista!(핀란드 제품을 사세요!)”

1970~1980년, WTO 이전이니 알 게 뭐야.

어떤 점에서는 대한민국과 비슷한 것 같다. 아님 말고.

그런데 지금도 핀란드 제품을 사라는 광고를 한다. 어이... 잠깐만?

근황[편집]

냉전 체제가 무너진 이후 EU에도 가입하고 2002년쯤에는 유로화도 쓰면서 그럭저럭 넉넉히 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유로를 쓰는 그리스를 비롯한 여러 부실한 국가의 말썽으로 유럽 전체에 경제 위기가 찾아왔고, 하필 여기에 핀란드 정치인들이 퍼나르기 버프를 시전하여 돈을 유럽 연합에 바가지로 퍼다 붓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재정을 효율적으로 벌 궁리를 발표하였는데, 이걸 발표한지 며칠 되지 않아 노키아가 팔려나가 핀란드가 묵념 상태에 빠졌다. 지못미.